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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프라이즈

외교적 무시를 당했던 조선 // 앨리스 루스벨트 Alice Roosevelt <대통령의딸><서프라이즈>

독일여성 엠마 크뢰베 [Emma Kroebel]

 

 

그녀는 1905년, 조선궁중에서 1년간 궁중의전 담당관을 지낸 외국 여인이었다.

엠마 크뢰베는 "내가 조선의 궁정에 어떻게 들어가게 되었는가" 책을 출간했다. 조선에 대한 기록서였다.

 

"내가 조선의 궁중에 어떻게 들어가게 되었는가"

1909년에 베를린에서 출간된 책으로 엠마 크뢰벨이 1년동안 대한제국에 머무르면서 분석한 내용을 담았다.

 

 

 

외국인이 쓴 조선기록서 한권이 출간되자 예상치 못한일이 발생했다.

 

 

책에 기록된 한사건을 두고 미국 언론이 들끓은 것이다. 문제가된 사건은 26대 미국대통령 시어도어 루스벨트의 딸이 조선에 오면서 비롯된다.

 

사건의 배경이 되었던시절 우리나라의 국호는 대한제국 임금은 고종이었다. 당시 우리민족은 호시탐탐 침략을 노리는 우세에 무리들에게서 독립을 지키기위해 외교문제에 각별히 신경을 쓰고 있었다. 때마침 미국에서는 제26대 시어도어 루스벨트 대통령이 자신의 휘하에 있던 장관들을 아시아 각국으로 파견하여 외교정책을 추진하고 있었다. 그러던 1905년 9월19일 이날은 미국의 시어도어 루스벨트 대통령이 자신을 대신해서 딸 앨리스 루스벨트[Alice Roosevelt]를 조선에 파견하기로 한날이었다.

 

 

대통령의 딸 앨리스 루스벨트는 어떤인물일까?

 

 

 

당시 미국의 공부라고 불리던 앨리스 그녀는 출중한 미모를 자랑하며 만인의 추앙을 받고 있었다. 그녀가 사교계 행사에 나타나면 단연 주의의 시선을 끌었고 신문에는 연일 앨리스의 일거수 일투족에 대해 보도할정도 였다. 심지어 드레스 디자이너가 그녀를 위해 특별히 만든 푸른색의 옷감은 앨리스 블루라는 이름이 붙어 최고의 유행상품이 되었으며 그녀에게 바치는 노래까지도 만들어 졌다.

 

 

앨리스 블루 [Alice Blue]

앨리스가 가장 좋아했던 색깔로 당시 미국에서 대단히 유행했다.

 

앨리스 블루 가운 [Alice Blue Gown]

앨리스를 위해 만들어진 히트송으로, 1919년 브로드웨이 뮤지컬 '아이린'의 음악으로 쓰였고 그 뮤직컬은 1940년 영화로도 만들어 졌다.

 

 

그야말로 앨리스는 미국에서 공주 대접을 받고 있는 존재였다. 바로그 미국의 공주 앨리스가 대통령의 아버지의 외교사업을 대신해 수십명의 의원들과 조선을 방문하기로 되어있었던것이다. 당시 고종은 미국 최고 지도자의 딸이 직접 방문한다는 사실에 미국이 조선에 표하는 우호적인 신호로 판단했다. 그리고 조선을 압박하던 일본의 공격에 대비하고자 했다. 당시 고종은 강대국인 미국과 공동으로 일본의 침략에대해 방어와 공격을 할수있는 군사동맹을 맺으려고 준비하고 있었다. 그리고 앨리스에게 자신이 할수있는 최대한의 환영을 표하기위해 야외 만찬 행사를 마련해놓고 있었다. 얼마뒤 드디어 고종앞에 자신의 약혼자와 동행한 앨리스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런데

 

 

 

말을 타고 흙먼지를 일으키며 나타난 미국 대통령의딸 앨리스는 반짝이는 장화 자주색의 승마복 차림에 입에는 시가 담배까지 물고 있었다. 그녀를 보던사람들은 한국가를 대표해서 외교 수행을 하로온 사람이 상식밖의 옷차림으로 나타나자 당황함을 감추지 못했다. 그전에 있었던

 

엠마 크뤼베는 당시 상황을 이렇게 표현했다.

"나도 해외 생활양식에 익숙한 사람이지만 그녀가 입고 나타난 복장은 이해할수 있는 도를 넘었다. 더군다나 국빈대접을 받는 사람이 이렇게까지 무례하게 굴수있을까? "

 

심지어 조선 관료들이 왕실 격식에 따라 최대한의 경의를 표하는동안에도 앨리스는 이모든 격식이 장난이라고 여기는듯했다. 아이처럼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신이 나있던 앨리스가 갑자기 시야에서 사라졌다.

 

그런데 놀라운 일이 발생했다.

 

그녀가 왕릉에 세워둔 수호신 조각상에 올라탄것이다. 뿐만아니라 앨리스는 곁에있던 약혼자 롱워즈에게 사진을 찍어달라고 소리쳤는데 당시 앨리스가 올라탄 석상은 조선의 국모 였던 명성황후의 무덤가에 세워둔 것으로 왕릉에 묻힌 명성황후의 영혼을 생전과 같이 호위한다는 의미가 깃든 석상이다. 때문에 앨리스의 행동을본 조선관료들은 경악하고 말았다. 또한 앨리스와 일행은 외교 협상을 하기위한 자리에서도 외교정책에 대에 논의하기는 커녕 수행원들과 술을 마시고 웃고 떠들다가 끝내 미국으로 떠났다고 한다.

 

그리고 4년뒤 자신의 고국으로 돌아갔던 엠마 크뢰벨이 앨리스 방문사건을 비롯한 1년간의 조선관련 기록을 책으로 출간했다. 그런데 출간 직후 1909년 11월 앨리스의 남편이된 롱워스[Nicholas Longworth]가 엠마 크뢰벨의 책에 기록된 조선에서 일어난 사건은 사실 무근의 일이라며 반박하고나섰다. 

 

롱워스의 주장은 이러했다.

"앨리스나 저 둘중 누구도 그숭배물을 기억하지 못합니다. 그리고 앨리스가 조선의 거리를 승마복 차림에 반짝거리는 장화를 신고 말을 타고 다니지 않았다는것은 확실하게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황후 무덤다에 있던 조각상에 올라타고 저에게 사진을 찍어 달라고 외쳤다는 것도 사실이 아닙니다."

 

한편 롱워즈의 한말에 대해 엠마 크뢰벨은 공식입장을 발표 하였다. 당시 독일에 있던 엠마 크뢰벨이 1909년 11월 20일 책에 실린내용은 사실 그대로를 전한것이라고 뉴욕타임즈를 통해 반박기사를 실었다. 이후 조선에서 일어난 앨리스 공주 사건은 진실공방으로 이어졌고 이를 증명할 어떠한 근거 자료도 없어 양측의 진위를 가리지 못한채 100여년의 시간이 흘러 갔다.

 

 

그런데 2007년 미국 코넬대학교 도서관에서 우연히 사진한장이 발견 됐다.

 

 

 

 

최초 발견자는 미국에서 도서관 사수로 활동하는 한국인 남성 발견된 사진의 배경은 분명 조선의 왕릉 이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시선을 사로 잡는것은 돌로 만들어진 조각상을 타고 있는 한여인 승마용 장화를 신고 장갑을 낀 손에는 말채찍이 들려있었다. 사진속 인물은 분명 앨리스 루스벨트였다. 이로써 한장의 사진은 100년전 앨리스 사건을 밝히는 중요한 단서로 작용했다. 그런데 무덤에 말조각상에 걸터 앉은 사진은 앨리스 뿐만이 아니었다. 앨리스 이외에 다른사람들이 비슷한 포즈로 사진을 찍었는데 미국 공사관소속의 관리들과 앨리스의 남편 롱워스도 속해 있었다. 그런데 더욱 놀라운 사실이 있었다. 

 

 

앨리스의 조선방문 당시 그녀의 행로 뒤엔 정치적 음모가 깔려 있었다는 사실

 

 

1934년 앨리스가 펴낸 자서전을 보면 조선을 방문했을당시 한국왕실에 대한 의미심장한 글귀가 있다. 

"조선은 속수무책으로 일본의 손아귀 아래 끌려들어가고 있다. 일본 장교들은 똑똑해보였으나 조선 사람들은 절망에 빠진듯 슬퍼 보였다. 황실로서 그들의 존재도 이제 얼마 남지 않은 상태다"

 

이것은 앨리스가 조선을 순방할 당시 이미 조선왕실의 행보가 어찌될지를 예견한 것이나 다름없었다. 당시 앨리스는 조선에 오기전 일본의 수상 가쓰라 다로를 만났다. 이어 미국의 시어도어 대통령을 대신해 미육군대령 태프트가 일본의 수상과 비밀리에 계약을 맺었다. 

 

가쓰라 - 태프트밀약 [1905.7.29]

1905년 7월 29일 미국과 일본이 비밀리에 체결한 협약으로 도쿄에서 은밀하게 맺은 협정

 

홋날 가쓰라-태프트밀약이라는 이비밀협약은 당시 일본이 조선을 지배하는것을 미국이 사실상 인정해주고 그대가로 미국은 일본으로 부터 필리핀의 지배권을 얻었던 사건이다. 하지만 이런사실을 알지 못했던 고종은 기울어 가는 조선을 살리고자 앨리스에서 극진히 국빈대접을 했던 것이다. 

 

그리고 얼마후 미국과 일본의 비밀협약이 발휘된다.앨리스가 조선을 방문한지 2달뒤였던 11월 미국의 힘을 얻은 일본이 일본이 조선에게 강제로 을사조약을 맺었던 것이다. 

 

을사조약

1905년 일본이 대한제국을 강압하여 체결한 조약으로, 외교권 박탈과 통감부 설치 등을 주요 내용으로 한다. 이조역으로 대한 제국은 명목상으로 일본의 보호국이나 사실상 일본의 식민지가 되었다. 

 

우연히 발견된 한장의 사진 이렇듯 사진 이면에는 강대국에 둘러싸여 외교적 무시를 받아야했던 우리역사의 아픈 과거가 담겨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