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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프라이즈

자크루이 다비드의 후회 <어느화가의 고백><서프라이즈>

힘있고 역동적인 구도

 

 

금방이라도 뛰어오를 듯 치켜든 백마의 앞발 이그린은 성 베르나르 협곡을 넘는 나폴레옹으로 나폴레옹의 위대함을 가잘잘표현한 대표적인 명작이다. 그런데

 

1825년 벨기에 브뤼셀 한노인이 회한에 잠겨 그림을 바라보고 있다. 그노인은 바로 성 베르나르 협곡을 넘는 나폴레옹을 그린 화가 자크루이 다비드[Jacques-Louis David]였다.

 

1748년 프랑스에서 태어난 자크 루이 다비드 프랑스 혁명당시 듣진 혁명세력으로 혁명가 마라가 암살을 당하자

<마라의 죽음>이라는 그림을 그렸다. 이그림은 시민들의 열띤 호응을 얻어 마라의 장례행렬에 사용되었고 자크는 당시 혁명정신을 대표하는 화가로 시민들의 존경을 한몸에 받았다. 그러던 어느날

 

1797년 파리 당시 나폴레옹은 28살의 젊은 나이로 혁명정신이 흐지부지해지는 프랑스에 혁명정신을 실현해줄 젊은 지도자로 떠오르고 있었다. 자크는 나폴레옹만이 형명정신을 실현해줄 유일한 대안이라고 생각 했다. 어떻게 하면 나폴레옹을 좀더 위대하게 그릴수 있을까 고민하던 자크는 고대 그리스 로마 신화에서 영감을 얻는다. 이렇게 해서 탄생한 그림이 그 유명한 성베르나르 협곡을 넘는 나폴레옹이다.

 

 

"성 베르나르 협곡을 넘는 나폴레옹"-자크 루이 다비드 Napoleon Crossing the Alps - Jacques-Louis David

 

 

자크는 역동적인 대각선 구도로 진취적인 도전 정신을 강렬하게 표현 하였고 눈은 그어떤 역경도 헤쳐나갈수 있는 영웅의 눈빛으로 그려 넣었다. 그리고 화려한 붉은 망토와 군복으로 나폴레옹의 위상을 더욱 높였고. 결연한 발동작은 그어떤 어려움도 뚫고 나갈듯한 기세로 보였다.

 

이그림은 나폴레옹은 물론 시민들에게도 큰호응을 얻었다. 이그림을 통해 나폴레옹은 혼란스러운 프랑스를 안정시키고 혁명정신을 실현 시켜줄 위대한 지도자 이미지를 시민들에게 각인시킬수 있었다.

 

 

 

그런데 이그림은 사실과 전혀 달랐다.

 

 

 

 

화가 폴 들라로슈는 나폴레옹이 실제 알프스산을 넘을당시의 상황을 있는 그대로 그린것으로 전해 지는데 그 그림과 비교해 보면 자크의 그림이 얼마나 심하게 현실을 왜곡해 나폴레옹을 영웅화 했는지를 알수있다.

 

자크 루이 다비드의 나폴레옹                                     폴 들라로슈의 나폴레옹

 

 

실제 나폴레옹이 타고 있던건 백마가 아니라 노새였다. 당시 기록에 따르면 나폴레옹은 알프스를 넘기위해 말이아니라 안전한 노세를 탔다. 그리고 맨앞에서서 병사들을 이끈것이 아니라 병사들을 앞서 보내고 현지 농부의 안내를 받으며 한발한발 조심조심 이동했다고 한다. 그리고 일반적인 군복을 입고 추위에 떠는 나폴레옹을 붉은 망토에 화려하고 멋진 군복을 입은 용맹스러운 모습으로 멋지게 표현 했던 것이다.

 

 자크가 영웅의 모습으로 극대화해 나폴레옹은 프랑스 최고의 영웅이 된것이다. 나폴레옹은 이그림에 무척만족해 자크에게 똑같은 그림을 4점 더 그리게해서 주변국들에게 선물하기 까지 했다. 자크의 노력 덕분인지 나폴레옹을 향한 시민들의 지지율은 점점더 높아졌고 정권을 잡은 나폴레옹은 총통의 자리에 까지 오르게된다.

 

그러던 어느날 나폴레옹을 키작고 뚱뚱하며 추하게 그린 그림을보고 화가난 자크 본격적으로 나폴레옹 초상화를 그리기 시작한다. 급기야 자크는 미남대역을 고용해서 나폴레옹 초상화를 그리기 까지 했다. 자크는 조각같은 이목구비를 지니고 배도 전혀 나오지 않았으며 완벽한 체격을 지닌 아름다운영웅 나폴레옹의 모습을 수없이 많이 그려 냈다. 그리하여 나폴레옹은 프랑스 역대 지도자중 가장 화려한 초상화를 가장많이 지닌 지도자가 되었다. 

 

 

 

그런데 자크와 나폴레옹의 사이가 벌어지는 결정적인 사건이 일어난다.   

 

 

 

그것은 바로 나폴레옹이 황제가 되려고 한다는 소식이었다. 시민혁명으로 간신히 왕정을 무너뜨렸는데 다시 나폴레옹이 황제로 등극한다니 그것은 자크가 평생 기울인 노력이 헛수고가 되는것과 같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폴레옹은 자크에게 자신의 황제 득위식 그림을 그려달라는 특별 주문을 했다. 결국 자크는 나폴레옹의 간곡한 부탁으로 황제 즉위식 그림을 그려주기로 했다.

 

 

<나폴레옹 황제 대관식> 자크 루이 다이드 L'incoronazione di Napoleone, 1808, Parigi, Louvre

 

나폴레옹 황제 대관식은 길이 10미터에 달하는 초대형 규모에 200명의 하객이 등장하는 그림으로 자크가 그린그림중 가장 화려하고 장엄한 대작으로 손꼽힌다. 이그림에서 나폴레옹은 공손하게 두손으로 왕관을 들고 있고 교황은 대관식을 매우 흡족해 하듯 온화한 표정을 한체 오른손을들어 나폴레옹을 축복하고 있다.

 

그런데 이것또한 나폴레옹의 요청으로 조작된것이다. 실제 자크가 스케치한 상황을 보면 나폴레옹이 거만하게 한손으로 왕관을 들어 스스로 쓰고 있으며 교황은 매우 불퀘한 표정을 하고 두손은 무릎위에 올려놓고 있다. 그리고 나폴레옹이 황제가 된다는 사실에 실망해서 초대한 사람들이 많이 오지 않자 나폴레옹은 실제로 오지도 않은 유명인사들을 다 그려넣게 했다. 이후 나폴레옹은 황제에 오르고 나서 점점더 심한 독재 정치를 하고 급기야 아들에게 황제의 자리를 세습하려 하는 움직임까지 보이게된다.  그러자 나폴레옹에게 크게 실망한 자크는 벨기에로 망명을 떠나고 만다.

 

나폴레옹이 황제의 자리에 오르는데 결정적인 도움을 준 화가 자크 루이 다비드 하지만 그는 나폴레옹을 위해 그림 그렸던걸 후회하면서 생을 마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