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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프라이즈

아돌프 히틀러의 집착<서프라이즈>

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 베를린

 

 

나치 독일의 총통 아돌프 히틀러[Adolf Hitler]는 2차 세계대전중 유럽 각국의 미술품을 광적으로 약탈했다. 그가 약탈한 미술품은 무려 500만여점 그는 왜 미술품에 이토록 광적인 집착을 보였던 것일까?

 

1908년 오스트리아 비엔나의 국립미술 아카데미 20살이던 히틀러는 비엔나국립미술아카데미 입시 시험에 연이어 2번이나 낙방하자 크게 좌절했는데 어린시절부터 화가를 꿈꾸던 히틀러는 미술에 대한꿈 때문에 13살때 학교를 자퇴하고 매일같이 자신의 방에서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하지만 엄한 그의 아버지 알로이스 히틀러는 당장그림을 그만두고 다시 학교로 돌아가 공부할것을 강요했다. 심지어 믿었던 어머니 클라라 히틀러 조차 자신의 마음을 이해해주지 않자 결국 히틀러는 7년뒤 19살이 되던해에 국립 미술아카데미 시험을 치르기위해 비엔나로 향한다. 

 

 

drawing by adolf hitler

 

 

7년뒤 오스트리아 비엔나 

하지만 현실은 냉혹했다. 아무런 기술도 없던 19살의 히틀러는 비엔나에서 일자리를 구할수 없었고 가지고 있던 돈은 이미 바닥이나기 시작했다. 굶기를 매일같이 반복했고 잠을잘곳도 마땅치 않았던 그였지만 그런상황에서도 그는 화가의 꿈을 포기하지 않고 그림그리는 연습을 게을리하지 않았는데 할줄아는것이 그림그리는것 밖에 없었던 히틀러는 엽서를 그려 팔아보기도 했지만 그것으로 생활을 유지하기는 힘들었다. 그는 화가로서 자신의 능력을 의심하지 않았고 비엔나 국립미술아카데미입시 시험에도 합격할 자신이 있었다. 그런데 히틀러는 비엔나 국립미술아카데미 시험에 떨어지고 만다. 

 

결과에 승복할수없었던 히틀러는 국립미술아카데미 학장을 찾아가 항의하기에 이르렀는데... 하지만 국립미술아카데미 학장의 말은 더큰 비수가되어 꽂이고 말았다. 당시 유럽에서는 사물을 과장하고 왜곡하는 야수파 작품들이 인기를 끌기 시작했는데 하지만 히틀러의 그림은 야수파 작품들과는 달리 인물과 건물을 최대한 사실적으로 묘사했고 그러한 그림을 그린히틀러를 국립미술아카데미에서는 학생으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결국 히틀러가 그토록 원하던 화가의 꿈은 좌절되고 말았다. 

 

30년뒤 독일베를린  

나치 독일의 총통이된 히틀러는 유럽 각국을 침략했고 침략후 제일먼저 한일은 그나라의 미술품을 약탈했는데 그는 미술품 수집을 위한 특수부대 엘른자츠타프가 편성될정도로 미술품 약탈에 광적인 집착을 보였다. 특히 히틀러는 독일내유대인들의 그림을 압수하고 유대인 화가들의 미술활동을 엄격히 제안했는데 이는 자신의그림을 무시하고 두번이나 입학을 거절했던 비엔나 국립미술아카데미의 학장이 유대인이었기 때문이었다. 또한 112명 야수파 화가들 작품을모아 퇴폐미술전이란 이름으로 전시회를 열었다. 야수파 작품옆에 정신병 환자들의 그림을 함께 전시해 사람들에게 흉몰스러운 작품이라고 인식을주며 야수파 화가들을 조롱하기도 했다. 

 

1945년, 제2차 세계대전이 막을내리고 분노는 그의 자살로 끝을 맞았는데 히틀러의 비뚤어진 집착때문에 전쟁후 유렵 1,000여 곳에서 약탈한 미술품 500만 여점이 방견되었고 본소유주에게 미술품을 돌려주는데만 무려 6년의 시간이 걸렸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