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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프라이즈

루이 17세의 심장 [200년만의 재회][서프라이즈]

1788년 프랑스 혁명 발발 이후

 

 

마리 앙투아네트[Marie Antoinette]는 루이 16세의 처형을 지켜만 봐야 했고 자신역시 성난군주에의해 단두대에서 처형당하며 그녀의 이야기는 역사의 비극으로 남겨졌다. 그런데 이 프랑스 혁명뒤에는 마리 앙트와네트보다 더한 비극과 미스터리를 간직한 인물이 있었으니 바로 마리 앙투아네트 아들인 루이 17세 였다.

 

마리 앙투아네트 자식들중 둘째 아들로 태어난 루이 샤를 [Louis Charles] 1789년 원래 프랑스의 황제였던 루이 조제프[Louis Joseph]가 병으로인해 죽게 되자 동생 샤를이 4살의 어린나이로 황태자에 오르게 되는데 당시 샤를은 어머니의 사랑을 받으며 재롱을 부르던 어린소년에 불과 했다.

 

 

Louis Charles

 

그런데 샤를이 황태자에 오른지 10일후인 1789년 프랑스 대혁명이 일어나게 된다. 이로인해 어머니 마리 앙투아네트와 아버지 루이 16세는 성난군중들로인해 처형당하고 샤를과 누이 마리 테레즈[Marie Therese]는 간신히 죽음만은 모면한체 차가운 감옥에 갇히게 되었다. 그리고 샤를은 그안에서 프랑스 왕가의 전통 계승자로써 루이 17세라는 이름뿐인 프랑스 왕위를 물려 받게 되었다.

 

그리고 몇년후 감옥에 있던 루이 17세가 사망하자 절차에따라 5명의 부검인이 시체부검에 참여해 루이 17세의 죽음을 확인했고 사인은 폐결핵으로 기록되었다. 그때 그의 나이 불과 10살이었다. 그리고 이로써 프랑스 부르봉왕가 [House of Bourbon] 전통계승자는 역사속으로 사라지는듯 했다.

 

몇년후

 

 

 

나폴레옹 보나파르트 [Napoleon Bonaparte]

 

프랑스 정권을 장악했던 나폴레옹 보나파르트 [Napoleon Bonaparte]이 전쟁에 실패하며 물러나자 몰락했던 프랑스 부르봉 왕가가 부활하게 되고 이런 왕정 복구가 이루어 지면서 그때부터 부르봉 왕위를 둘러싼 계승자 논란이 시작되는데 이때 왕계승권 1순위 였던 루이 17세의 죽음이 다시 부곽된다. 그리고 이와 함께 루이 17세의 죽음에 대한 의혹이 제기되는데 그의 시신확인과 부검에 참여한 검시관들중 어느누구도 그전에 루이 17세를 만나본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당시 혁명정부는 같은 감옥에 있던 그의 누이 마리 테레즈 조차 시신 확인 절차에서 제외 시켰다는데 그렇다면 어떻게 죽은 소년이 루이 17세임을 확인할수 있었던 것일까? 이런의혹을 바탕으로 곧이어 루이 17세가 살아있다는 주장이 제기된다. 그리고 프랑스 전역은 술렁이기 시작했는데 만약 루이 17세가 살아있다면 그가 바로 프랑스 왕위 계승권 1순위는 물론 막대한 왕가 재산을 상속받게 될 주인공이었기떄문이었다. 이런소문이 퍼지면서 자신이 루이 17세라고 사칭하는 사기꾼이 100여명에 달했다. 하지만 정작 루이 17세의 행방은 확인할수 없었다. 

 

 

 

칼 빌헬름 난돌프[Karl Wilhelm Naundorff]

그러던중 1833년 프랑스 파리에서 프랑스를 발칵 뒤집을만한 인물이 등장한다. 그는 독일에서온 칼 빌헬름 난돌프[Karl Wilhelm Naundorff]라는 남자였는데 그는 다른 가짜들과는 달리 자신이 루이 17세란 증거를 제시했다. 우선 난돌프는 루이 17세의 어릴적 모습들은 물론 왕가 사람들과도 놀랍도록 닮아 있었고 또한 그는 어릴적 베르사유 궁전 생활에 대해 진짜 루이 17세가 아니면 알지못할 아주 세세한 부분까지 기억하고 있었다. 처음에 의심에 눈길을 보내던 사람들은 점점 난돌프를 루이 17세라고 믿기 시작했고 그리고 무엇보다도 난돌프에게는 그가 루이 17세라는 결정적 증거가 있었다. 그의 팔에는 루이 17세가 어릴적 맞았다는 주사의 흔적이 똑같이 있었고 또 허벅지에 있는 세모 모양의 점은 유전적인것으로 아버지인 루이 16세와도 일치 했던 것이다. 마침내 왕가의 유모와 대신들은 그가 틀림없는 루이 17세라고 확신했다. 하지만 이미 정권을 잡고 있던 프랑스 기득권 세력은 그를 절대 인정하지 않았고 급기야 난돌프를 네덜란드로 강제 추방하고 말았다.  

 

그리고 몇년후 난돌프가 사망하고 그의 묘지에는 묘비가 세워지게 되는데 거기에는 프랑스왕 루이 17세 여기서 잠들다 라고 세겨져있다고 한다. 이후 오랜시간이 지나도록 사람들은 그를 루이 17세라고 믿고 있었다.

 

 

 

그로부터 100여년후 1975년 이탈리아에서 프랑스 파리 생드니 성당에 작은 물건이 배달되었는데 놀랍게도 그것은 바로 200년전 탕플 감옥에서 생을 마감한 루이 17세의 심장이라는것이었다. 사람들은 놀라운 소식에 경악을 금치 못했는데 이미 네델란드에서 난돌프가 안장되어있는 상태에서 돌연 감옥에서 죽었다는 루이 17세의 심장이 나타난 것이다. 이 심장은 감옥에서 죽은 루이 17세의 부검직후 도난당해 이탈리아로 가게되었고 이것을 우연히 얻은 이탈리아 귀족이 다시 파리 생드니 성당에 기증했다고 한다. 하지만 당시의 과학으로는 루이 17세의 것이라는 확인을 할수 없었는데 마침내 1999년 DNA 검사를 실시 하게되었다. 전 세계가 주목하는 가운데 유전 공학자 장자크 카시망[Jean Jacques Cassiman] 교수는 성당에 기증된 심장과 한 수녀원에서 찾은 마리 앙트와네트의 머리카락으로 DNA분석을 하게 되는데 모두의 관심이 검사에 집중되고 드디어 실험 결과가 발표 되었다.

 

탕플 감옥에서 죽은 소년이 바로 프랑스의 마지막 황태자 루이 17세 였던 것이다. 동시에 이제껏 가장 유력하게 생각되었던 난돌프는 왕가의 명예와 재력을 노린 희대의 사기꾼이라는것이 밝혀지는 순간이었다.

 

한나라의 황태자로 화려한 삶을 누리다 하루 아침에 죄수로 전락해 10살의 나이로 생을 마감해야 했던 루이 17세 그리고 그가 남긴 심장 한조각 그것은 200년간이나 계속되었던 혼란의 종지부를 찍으며 2004년 2월 프랑스의 황태자 루이 17세로 루이 16세와 마리 앙트와네트의 아들로 프랑스 왕실묘, 생드니 성당에 정식으로 안치 되었다. 그것은 실로 200년만에 이루어진 재회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