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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프라이즈

처녀여왕의 비극 <엘리자베스 1세> [서프라이즈]

자신에게 사랑을 고백하는 남자들마다 모두 매몰차게 거절한 엘리자베스 1세!

 

그녀는 청혼을 거절했을뿐 아니라 남자들을 경계 하며 멀리했는데 엘리자베스 1세가 남자를 멀리한이유는 바로 그녀의 어머니 떄문이었다

 

 

 

엘리자베스 1세의 어머니인 앤불린은 잉글랜드의 왕인 헨리 8세의 두번째부인 이었다. 헨리 8세는 앤불린이 아들을 낳을거라 기대 했지만 앤불린은 딸인 엘리자베스 1세를 낳았고 그후 몇차례 임신을 했지만 유산을 하고 만다 그러자 앤불린에게 마음이 식은 헨리 8세는 다른여자에게 눈을 돌렸고 앤불린을 내쫓을 방법을 고민했다.

 

 

그 방법은 앤불린에게 간통 죄를 씌우는 것이었다.

 

앤 불린이 여러 명의 남자와 간통을 저질렀으며 그들의 아이들을 임신해 유산했다는 것이었다. 결국 헨리 8세는 앤불린에게 간통죄를 씌워 참수형에 처한다. 사람들은 앤불린을 창녀라고 부르며 비난했고 앤불린은 간통을 저지른 왕비라는 오명을 쓴채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다.

 

 

그후 헨리 8세는 앤불린과의 결혼은 처음부터 무효이며 따라서 둘사이에서 태어난 딸 엘리자 베스는 사생아라고 선언했다. 그로인해 당시 3살이 었던 엘리자베스 1세는 공주의 직위를 박탈당한 채 왕궁에서 쫓겨나게 되었다.

 

 

엘리자베스 1세는 왕궁에서 멜리 떨어진 햇필드 하우스에 유폐되어 불행한 유년시절을 보내게 되었는데 엘리자베스 1세는 창녀의 딸이라며 손가락질 받았고 공주가 아닌 왕실에서 버림받은 사생아로 업신여김을 당했다. 창녀의 딸이란 비난속에 자랐던 엘리자베스 1세 그녀는 어머니처럼 억울한 누명을 쓰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했고 창녀라 불린 어머니와 다른모습을 보여주기위해 사랑을 고백하는 남자들을 매몰차게 거절하고 정숙하고 순결한 처녀의 삶을 살았다.

 

 

그러던 1558년

 

 

잉글랜드의 왕 메리 1세가 갑자기 사망한후 다음 왕위를 이을 계승자가 없자 잉글랜드 왕실은 엘리자베스 1세를 왕으로 추대한다.

 

 

엘리자베스 1세는 예상치 못하게 왕의 자리에 오르게 되는데 엘리자 베스 1세는 어머니를 간통죄로 처형했던 신하들을 경계하며 정숙하게 행동했다.그녀의 이런생각이 가장 잘나타난것은왕의 대관식이었다.

 

 

엘리자베스 1세는 대관식에서 금발머리를 일부러 길게 늘어뜨렸는데 일반적으로 대관식에선 머리를 틀어 올려야 하지만 엘리자베스 1세는 결혼하지 않은 처녀를 상징하는 늘어뜨린 머리를 했던것이다. 심지어 엘리자베스 1세는 자신이 국가와 결혼했다고 선포했다. 정숙한 처녀로 살려는 자기 암시이자 사람들에세 처녀여왕이란 이미지를 강조 하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엘리자베스 1세는 곧 한계에 부딪히고 만다.당시 여성은 나라를 통치하기에 부족함이 많다는 편견이 있었는데 잉글랜드 최초의 여왕인 메리 1세가 신교도들을 무자비하게 처형하며 피의 메리라고 불리는등 여성통치자로서의 모범을 보이지 못했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여왕에 대해 불신했고 여왕인 엘리자베스 1세 역시 마찬가지 였다.

 

또한 대신들은 엘리자베스 1세가 그녀의 어머니인 앤 불린처럼 여러남자들과 염문을 뿌리거나 문란한 사생활로 나라의 명예를 실추하고 국정을 파탄내지 않을까 의심했다.

 

간통죄로 처형당한 어머니 앤불린은 엘리자베스 1세에게 꼬리표처럼 따라 다녔다.그러자 엘리자베스 1세는 어머니에 대한 오명을 씻고 자신이 정숙한 여왕임을 대내외적으로 알리기위해 노력 했다.

 

엘리자베스 1세는 처녀를 상징하는 보석인 진주를 온몸에 장식했고 지신이 좋아하는 보석마다 Semper Eadem 이란 라틴어를 새겼다. 늘한결같다 라는뜻으로 영원히 처녀로 남겠다는 의미 였다. 또한 엘리자베스 1세는 처녀를 상징하는 여신의 그림에 자신의 얼굴을 그려넣게 했다.

 

 

화가들은 처녀들의 신인 디아나 나 평생 처녀로산 여신 베스타의 모습에 엘리자베스 1세의 얼굴을 그려 넣었다.

엘리자베스 1세는 이그림을 통해 자신이 처녀의 신처럼 순결하다는것을 강조한 것이다. 심지어 엘리자베스 1세는 곁에둔 시녀들에게도 정숙한 여성이 될것을 요구 했다. 그로인해 시녀들은 정숙해 보이는 검은색과 흰색 드레스만 입을수 있었고 사생활이 문란한 시녀는 궁에서 내쫓겼다.

 

엘리자베스 1세는 시녀들의 불찰로 인해 정숙한 처녀의 이미지가 손상될까봐 두려웠던 것이었다. 그렇게 평생 처녀 여왕으로 살았던 엘리자베스 1세 그녀는 국가와 결혼했다고 선포할 정도로 영원한 처녀 여왕으로 남고자 했고 수많은 왕족들의 청혼을 거절하며 독신으로 살았다.

 

 

 

70세의 일기로 사망할때까지 평생 독신으로 살았던 처녀 여왕 엘리자베스1세 그녀가 처녀로 산것은 간통죄란 오명을 쓰고 처형당한 어머니 때문이었다

 

엘리자베스 1세가 처녀 여왕이 된데에는 뼈아픈 비극이 숨어 있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