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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프라이즈

제레미 벤담 Jeremy Bentham 최대다수의 최대행복 [MY HAPPY END][서프라이즈]

법은 최대다수의 최대행복을 목적으로 해야 한다.

 

최대다수의 최대행복 [the greatest happiness of the greatest number]

 

 

 

주장했던 골주의 철학의 창시자 제레미 벤담 [Jeremy Bentham] 그의 사상은 미국 헌법뿐만아니라 1800년대 후반부터 1900년대 초반까지 전 세계 혁명가들에게 막대한 영향을 끼쳤다. 하지만 벤담 자신은 정작 세상과 소통하지 못하고 기형적인 삶을 살다간 인물이었다.

 

 

 

 

벤담 그는 어릴때부터 유별랐다. 3세에 영국 역사책을 읽기 시작했고 5세에는 그리스어와 라틴어를 깨우쳤으며 15세가 되던해에는 옥스퍼드 대학을 졸업했다. 그런데 이토록 뛰어난 능력이 있는 벤담이지만 그의 명성을 알린 최대다수의 최대행복은 의외의 상황에서 비롯된 이론이었다. 

 

언듯보기에 벤담은 다른 학생들과 같아보이지만 허약하기 짝이 없는 최대 약골이었다. 특히 다리근육이 발달하지 않은 벤담은 어린시절부터 계단 조차 걷지 못할정도 였다. 그렇게 약체로 살다보니 점차 벤담은 성격마저 바꾸어 놓았다. 언제나 맥없이 지내다보니 사람들을 대할때 늘 자신감이 없었던 것이었다. 더군다나 여자들에게는 단 한마디의 말도 못걸정도로 극도의 부끄러움을 탔고 대인기피증은 날이 갈수록 깊어져 평생을 독신으로 살게 만들었다. 

 

하지만 벤담에게도 유일한 친구가 있었다. 그것은 바로 동물과 생활도구들 그는 동물들이나 생활도구에 일일이 사람 이름을 붙여주고 냄비를 토미라고 부르거나 숟가락을 조이라고 부르는등 사람대신 동물과 물건을 친구로 삼았던 것이다. 또한 자신의 일상에서 자신들의 문건들이 유일한 대화 상대였다. 뿐만 아니라 그의집에는 강아지처럼 훈련이 잘된 돼지도 있었으며 기사작위를 부여받은 고양이도 있었다. 

 

그런데 어느날 벤담이 고양이 [랭본 경]과 산책중에 벌어진 일이었다. 고양이가 배변을 해결하던중 지나가던 행인의 발에 오물이 튀어버렸다. 이때 흥분한 행인은 급작스러운 상황에 고양이를 발로 찼고 이를 지켜보던 벤담은 극도로 흥분했다. 그리고 바로 그날밤 그날의 사건과 그동안 자신이 겪은 대인 기피증, 약골로써 살아온 자신의 생활을 뒤돌아보며 벤담은 <모든 생명이 있는 존재라면 약자가 보호받을 권리가 있나는 사상>을 확립하기에 이른다. 다로 그렇게 해서 발표하게된 벤담의 사상이 우리가 알고있는 공리주의의 핵심이자  모든 법은 가장 많은 사람들에게 가장 많은 행복을 주는것을 목표로 해야한다는 <최대다수의 최대행복>론이다. 

 

그런데 그후 벤담의 독특한 발상은 또한번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벤담은 인간이 죽은뒤 사체를 묘지나 관에 묻는 것은 돈 낭비라며 사체를 미라로 보존한다는것에 대해 논했다. 심지어 벤담은 영국정부에 도시에 가로수 대신 사람의 미라로 대체하자는  내용을 끊임없이 제출했고 영국정부가 받아들이지 않자 그는 기묘한 계획을 세우게 된다.

 

 

University College London  :  UCL

 

몇년후 1832년 죽기전 벤담은 자신의 전재산을 런던에있는 유니버시티 병원에 기증할뜻을 밝히며 동시에 조건을 달았다. 벤담은 자신이 기증한 돈의 쓰임새를 감시하기위해 자신을 미라로 만들어 이사회의 모든 회의에 참석해야 한다고 조건을 제시했다. 이는곳 그동안 벤담이 주장해온 사체의 미라 보존설을 스스로 실천하기위한 방법이기도 했다.

 

또한 시신을 해부할때도 시신 해부과정에서 장기가 도둑맞지 않도록 친구들이 반듯이 곁에서 지켜보도록 하는 조건을 제시했고 결국 병원측은 벤담의 유지를 받들어 그의 친구들이 지켜보던 가운데 장기들을 모두 끄집에 냈다. 하지만 이러한 광경을 지켜보는 친구들은 끔찍한 해부장면에 몸서리를 쳐야만 했다. 당시 의사는 벤담의 시신에서 장기들을 빼고 짚을 잔뜩 집어넣어 형채가 유지 되도록했다. 그런다음 양복을 입혀 나무로 짠 직사각형 상자에 미라를 집어 넣었다. 단 상자의 앞면은 벤담이 이사회 회의를 지켜볼수 있도록 유리문으로 만들었다.

 

그런데 문제가 발생했다. 내부가 제거된 벤담의 얼굴이 너무나 흉직했던 것이었다. 눈은 파란색 플라스틱으로 만들수 있었지만 움푹패였고 핏줄이 다보이는 양볼은 손쓸수가 없었던 것이었다. 고민하던 의사들은 몸에서 머리를 떼어내고 대신 밀랍으로 만든 모형을 몸에 붙였다. 그리고 그의 실제 머리는 미라의 양발사이에 놓아 두었다. 두눈을 부릅뜬 머리하나 그것은 바로 벤담의 실제 얼굴이다. 170여년이 지난 지금까지 왼손에 지팡이를 쥔채 안락의자에서 노려보고 있는 벤담의 모습그렇게 미라로 만든 그의 얼굴과 몸은 지금까지도 대학 이사회 회의를 지켜보고 있다.

 

 

그런데 벤담의 시신이 자리를 비운 예외의 상황이 있었다. 당시 미라가 있어야 할자리에는 큰 글씨로 휴가중이 라는 글이 적혀 있었는데 알보고니 딱정벌레 떼가 런던을 기습했을때 유리관 속에 까지 딱정벌레가 침투해 벤담 미라가 손상된것을 수리하기위해 다른 곳으로 옮겼던 것이었다. 하지만 그런뒤로 사후 약 200여년이 흐르는동안 지금까지 단 한번도 자신의 자리를 뜨지 않고 상자안에 있다고 한다.

 

살아서 지독한 대인 기피증에 시달린 사상가 벤담 때로는 그의 사상이 기괴한 방법으로 표출되기도 했지만 오히려 그의 기괴한 행적은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이라는 불변의 진리를 탄생 시켰다. 그리고 지금까지도 그의 사상은 세계인에게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