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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프라이즈

맨발의 마라토너 아베베 비킬라 Abebe Bikila [나는 다만 달릴뿐이다][서프라이즈]

체력과 정신력의 한계에 도전하며 42.195km를 달려야하는 끝없는 자신과의 싸움 "마라톤"

 

 

수없는 위기와 좌절을 극복한 자에게만 허락되는 희열과 성취감그래서 인생을 마라톤에 비유하기도 하는데 여기 마라톤 처럼 인생을 극적으로 살다간 한남자가 있다.

 

 

12살의 흑인소년 달리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하는 소년의 일은 "목동" 달리는 것이 유일한 취미이자 기쁨인 소년은 숨이 가슴까지 차오도록 매일 달리고 또 달렸다. 그렇게 소년은 건장한 청년으로 성장했다. 그는 20살이 되던해에 육군소속의 에티오피아 황제 근위대에 봅히게 되었고 군인이 되어서도 그의 달리기는 여전히 멈추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날 에티오피아 올림픽 출전 선수들의 환영 퍼레이드를 보게된 그는 선수들의 가슴에 새겨진 에티오피아 국기를 보고 올림픽 대표 선수를 꿈꾸게 되었는데 얼마후 자신의 특기인 달리기로 근위대 육상대회를 석권한 그는 꿈에도 그리던 에티오피아 올림픽 대표선수 유니폼을 입게되었다.

 

 

 

그리고 열린 1960년 이탈리아 로마 올림픽 그는 마라톤에 에티오피아 대표로 참가하게 되었고 각나라를 대표하는 선수들과 달리기 시작했다. 그렇게 두시간이 흘러 결승점에 다다를쯤에는 벌써 해가 저물어 가고 있었다. 바로 그때였다. 어둠을 헤치고 한선수가 들어 오고 있었는데 그는 에티오피아 대표선수였고 놀랍게도 맨발이었다.

2시간 15분 16초  이 맨발의 마라토너는 당시 11년동안 깨지지않았던 마의 2시간 20분때의 기록을 깨고 세계 신기록을 세우게 되었는데 그가 바로 우리가 잘알고있는 아베베 비킬라 [Abebe Bikila]선수였다.  

 

 

 

 

그런데 이날 아베베가 세운 세계신기록은 아주 우연한 기회가 가져다준 놀라운 결과였는데 사실 에티오피아 대표선수는 따로 있었다. 원래 와미 비라투 선수가 참가할 예정이었으나 그가 갑자기 다치는 바람에 아베베가 대신 참가하게 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와미 비라투와 아베베는 발싸이즈가 달라 올림픽 운동화 후원업체에서 제공한 운동화가 아베베에게 맞지 않았던 것이었다. 그때 까지 그는 전세계의 가슴을 울리는 각본없는 드라마의 주인공이 될것이라는 것을 알지 못했다. 그렇게 아베베가 맨발로 거머쥔우승은 그의 조국 에티오피아에게도 값진 승리 였다. 공교롭게도 1899년, 1934년 두차례나 에티오피아를 침공했던 이탈리아 아베베는 조국의 고통을 설욕하려는듯 맬발로 로마 땅 구석구석을 밟고 지나갔다. 게다가 1960년은 아프리카 국가들이 앞다투어 독립을 쟁취했던 때이기 떄문에 아베베의 승리는 곧 에티오피아의 승리이자 아프리카의 승리였다. 에티오피아 말로 피어나는 꽃이라는 뜻의 아베베는 에티오피아의 희망이고 꽃이었고 영웅이었다. 그뒤로 맨발의 마라토너 아베베의 검은 돌풍은 계속되었다. 그는 다른 마라톤 대회에서도 그의 조국 에티오피아에 우승을 안겨주었고  

 

 

 

 

그렇게 또 4년이 흘렀다. 1964년 도쿄 올림픽이 40일 앞으로 다가왔고 아베베는 또하나의 신화를 준비하고 있었다. 그런데 연습중이던 아베베가 갑자기 복통을 호소하며 쓰러졌다. 급성 충수염이었다. 올림픽 출전 6주 전에 생긴 이 불미스러운 일로 아베베의 4년간의 노력이 그리고 올림픽 2관왕의 꿈이 물거품 되는듯 했다. 1964년 도쿄올림픽 마라톤 역사상 또하나의 세계신기록이 탄생했다. 그 세계 신기록의 주인공이자 도쿄 올림픽의 마지막 금메달 리스트는 바로 아베베 선수였다. 2시간 12분 11초, 로마올림픽에서 자신이 세운 세계신기록을 3분이나 단축시킨 대 기록이었다. 갑작스러운 수술도 올림픽을 향한 아베베의 의지를 꺽을수 없었다. 결국 그는 불굴의 의지로 다시 일어섰고 올림픽 2관왕의 영광과 세계신기록이라는 기적같은 기록을 세운것이었다. 그의 빛나는 투혼은 다시한번 전세계를 감동 시켰다. 

 

그리고 또 4년이지나 1968년 올림픽은 다시 찾아왔다. 무명의 마라토너 아베베는 어느새 에티오피아의 영웅이 되어있었고 또 아프리카의 자존심이 되어있었다. 그리고 전세계인들도 아베베가 세울 또다른 신기록을 기다리고 있었는데 예상대로 초반부터 선두그룹을 지키고 있는 아베베이대로만 간다면 그의 우승은 확실해 보였다. 그런데 17km 지점을 지날때쯤 선두 그룹에 있던 아베베가 갑자기 그자리에 주저 앉는것이었다. 그러넫 사실 아베베의 기권은 이미 예고된 것이었다. 맥시코 올림픽을 앞두고 아베베는 다리에 골절상을 입게되었고 달릴수 없게 되었다. 하지만 아베베는 동료선수인 마모 웰데 선수를 위해 기꺼이 페이스메이커가 되어 달려주기로 했던 것이었다. 

 

다른 선수들이 아베베를 견제하는 동안 마모 웰데 [Mamo Wolde]선수는 페이스를 조절해 달릴수 있었고 결국 그 대회에서 금메달을 획득했다. 동료를 위한 그의 불굴의 투혼이 알려지자 금메달을 받을때 보다 더큰 박수가 쏟아져 나왔다. 그리고 아베베는 다시 일어섰다. 부상으로 멕시코 올림픽에 완주하지 못했던 것을 설욕이라도 하듯 아베베는 다시 열심히 매달렸다. 하지만 아베베의 시련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1969년 3월 차를 타고 집으로 돌아가던중 교통사고를 당하고 말았다. 공교롭게도 그차는 올림픽 수상을 기념하여 하일레 셀라시에 황제가 선물한 것이었다. 그 사고로 아베베는 목과 척추에 큰 손상을 입게 되었는데 결국 아베베는 하반신 마비로 평생을 휠체어 에서 생활 하게 되었고 이 불의의 사고로 인해 마라토너로써의 인생은 끝나고 말았다. 많은 사람들이 그의 사고를 안타까워 했지만 그는 서서히 사람들의 기억속에서 잊혀져 갔다.

 

 

 

하지만 아베베는 포기하지 않았다. 지독한 재활 훈련을 시작했고 두 다리 대신 두팔로 할수있는 다른 스포츠에 도전하게 되었던 것이다. 그 결과 제 19회 장애인 올림픽 대회에서는 양궁을 물론 탁구에도 참가해 금메달을 수상했다. 그는 좌절하지 않고 자신의 한계에 도전 하며 진정한 인간 승리의 모습을 보여준 것이었다. 하지만 기쁨도 잠시 1973년 10월 또한번의 시련이 닥쳤다. 휠체어를 타고 가던 아베베는 또 다시 교통 사고를 당했고 결국 뇌출혈로 사망 하고 말았다.

 

맨발의 마라토너 올림픽 최초의 2관왕 아프리카 최초의 금메달리스트이자 올림픽과 장애인 올림픽 동시금메달리스트 이런 각가지 수식어를 떠나서 그는 진정으로 승부를 즐길줄아는 진정한 스포츠맨 이었다. 고난과 위기도 불굴의 의지로 이겨낼줄아는 아베베 비킬라 그야 말로 고난속에서도 꺾이지 않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꽃은 아니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