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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프라이즈

Ah Dee Dong Blues [아디동 블루스][서프라이즈]

지금 들려드릴 음악 한곡에 대한민국이 있습니다.

 

 

 

 

익숙하지 않은 재즈선율 하지만 친숙함이 느껴지신다면

 

이한곡의 노래에서 우리의 노래 아이랑을 찾아낸 사람입니다.

 

 

 

 

지난 2008년 미국 2,200여개의 개봉관에서 공개된 심형래 감독의 영화 <디워> 당시의 미국언론은 영화의 엔딩삽입곡 <아이랑>에 각별한 관심을 나타냈고 심형래 감독은 한국적인것을 알리고 싶어서 아이랑을 선곡했다고 설명했다. 심지어 시애틀 오케스트라와 아리랑을 녹음할당시 외국 연주자들이 아이랑에 대해 애절한 슬픔이 느껴지는 천재적인 노래라며 작곡자를 물어볼 정도라고 하는데 이렇듯 아리랑은 세계인과 소통하는 대한민국의 대표곡이며 현대에들어 아리랑의 곡조는 세계가 공감하는 멜로디로 인정받고 있다. 하지만 우리의 아이랑이 국내에서 천대받던 시절에도 이국땅에서는 애절한 서정시나 반전의 노래로 재해석돼 불린사연을 알고있는 이는 많지 않을것이다. 

 

 

 

한국전쟁과 재즈 연주가 오스카 페티포드 OSCAR PETTIFORD 

1950년 한국전쟁당시 군부대는 위문 공연을 하기위해 미국연주가들이 종종한국을 찾던 때였다. 위문공연이 계획되었던 어느날 위문공연을 준비하던 미국인 재즈연주가 페티포드의 귀에 신선한 멜로디가 들려왔다. 그노래를 듣게된곳은 부대 야전 화장실, 볼일을 보던그는 군인이 흥얼거리는 서정적인 휘바람소리에 매료되었던 것이다. 이에 앞뒤 생각지 않고 곡의 제목을 알기위해 화장실을 박차고 나간 페티포드는 통역관을 찾았고 통역관은 페티포드가 궁금해하는 곡명을 아이랑이라고 말해주었지만 페티포드는 끝까지 "아디동"으로 잘못 알아들었다. 그렇게 공연이 끝나고 

 

 

 

1952년 페티포드는 아리랑 휘바람 소리를 듣고 <아디동 블루스>라는곡을 탄생시키는데 그곡이 바로 미국버전의 아이랑이었다.  아디동 블루스는 탄생이후 미국내 순회공연을 통해 큰인기를 얻게 되었고 급기야 EP (Extended Play :도넛판)으로 발매되어 발매 일주일만에 미국에서 "이주의 앨범"으로 선정될만큼 큰인기를 불러 일으켰다. 재즈 연주가 오스카 페티포드는 이앨범의 부제를 원곡의 아리랑이란 이름을 넣어 아리랑을 알리게되는 계기를 만들었다. 이렇게 페티포드로인해 최초로 우리의 아리랑이 전세계에 전파되었고 급기야 세계 각국에서 불리게 되었다. 그리고 이후 더많은 세계인들에 의해 우리의 아리랑이 더 알려지게 되었는데

 

특히 일본 엔까의 대부로 잘알려진 고까 마사오는 어린시절 한국에서 들었던 아리랑을 편곡해 일본전역에 <아리랑 웃다>라는 곡을 발표해 큰 반응을 불러일으켰고 프랑스에서는 폴모리 악단에의해 장엄한 아리랑연주가 울려퍼졌으며 독일에서는 베리나와 베렌트가 아리랑을 노래했던것이다.

 

그리고 세계인의 마음을 울리는 또 하나의 아리랑이 있었다.

그것은 바로 미국 포크송의 거장으로 불리는 피트 시거 Pete Seeger 의 아리랑, 1950년도에 아리랑을 통해 한국에 관심을 가지던 그는 한국의 분단 현실을 안타까워하기도 했다.

 

피트 시거 Pete Seeger 의 아리랑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우리의 노래 아이랑은 세계의 유명가소 혹은 연주가에게 사랑받고 있었던 것이다. 이에 한국에서는 아리랑 세계위원회라는 단체를 만들어 아리랑을 외국인에게 쉽게 접할수있도록 번역서를 만들었다.

 

우리민족의 염원의 노래이자 사랑의 노래이며 애달픈 삶의 서정시인 우리의 노래 아리랑 지금은 대한민국의 또다른 자랑스러운 이름이되어 세계 곳곳에서 애창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