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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프라이즈

리전트 다이아몬드 Regent diamond [불멸의 다이아몬드][서프라이즈]

1701년 인도 크리스티나 강변

 

에위치한 파티알 광산 당시 인도를 지배하고 있던 영국은 노예들로 하여금 값비싼 광물채취에 열을 올리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날 광산의 노예였던 한남자의 눈에 무엇인가가 들어왔다. 그것은 놀랍게도 다이아몬드 원석이었다. 남자는 아무도 모르게 자신의 옷 속에 황급히 다이아몬드를 숨겼다. 그런데 얼마후 광산에 작은 사고가 발생했고 공교롭게도 이 사고로 남자는 발목에 심한 부상을 입고 말았다.

 

 

  다이아몬드 원석

 

그런데 사실은 이랬다. 사고는 남자가 일부로 낸것이었고 남자는 발목에 상처를 내 그 속에 다이아몬드를 숨겼던 것이었다. 그리고 그날밤 남자는 아픈다리를 이끌고 못숨을 건 탈출을 감행했다. 하지만 안전하게 도망치려는 배를타고 멀리 떠나야 하는남자를 태워주겠다고 나서는이는 어디에도 없었다. 그런데 남자는 다이아몬드의 절반 값을 주기로 약속하고 무사히 배에 오를수있었다. 그렇게 노예 였던 남자의 자유가 가까워 지는듯 했다. 그런데 기쁨도 잠시 안도감에 잠이 들었던 남자는 다이아몬드에 눈먼 선장에 의해 살해당하고 만다. 선장은 노예에게서 뺏은 다이아몬드를 즉시 "참천드"라는 보석상에게 5천 달러에 팔아 넘겼고 이후 돈방석에 앉은 선장은 흥청망청 돈을 탕진하며 방탕한 생활에 빠져들었다. 그런데 선장에게 이상한 일이 벌어지기 시작했다. 선장은 밤마다 자신이 죽인 노예의 환영에 시달렸고 그럴수록 그 괴로움을 떨쳐 버리기위해 점점더 술에 의지 했으며 몸은 점점더 망가져 가고 있었다. 얼마후 그는 다이아몬드를 판돈을 모두 탕진해 버렸고 노예를 죽인 죄책감에 시달리다가 결국 스스로 목숨을 끓고 말았다.  

 

 

 

 

다이아몬드를 차지하려고 했던 탐욕스러움 자들의 죽음 하지만 다이아몬드의 운명은 달랐다. 선장에게서 다이아몬드를 사간 찬천드는 이 다이아몬드를 당시 마드라스의 총독이었던 토마스 피트에게 무려 10만달러에 팔아넘겼다. 이 다이아몬드의 새주인이된 토마스 피트는 2년이라는 시간동안 2만 5천 달러를 들여 140,50캐럿의 브릴리언트 컷으로 연마했는데, 길이 27mm, 높이 19mm로 당시 유럽에서 가장크고 아름다운 브릴리언 형태의 다이아몬드였다. 이후 이보석은 총독의 이름을따 "피트 다이아몬드" PItt Diamond 로 불리게 되었는데 루이 14세 Louis XIV 를 비롯한 많은 군주들이 이 다이아몬드를 갖고싶어했다.

 

 

오를레앙 공장 필리프 Philippe d'Orléans

 

그러던중 1717년 당시 어린 루이 15세를 대신해 섭정을 하던 오를레앙 공장 필리프 Philippe d'Orléans 가 루이 15세에게 선물하기위해 당시로써는 최고인 가격인 50만달러에 이 다이아몬드를 구입하게된다. 이후 다이아몬드의 이름도 당시 섭정을 하던 필리프의 다이아몬드라는 뜻으로 리전트 다이아몬드 Regent diamond 로 바뀌게 되었다. 필리프에게 이 다이아몬드를 선물받은 루이 15세 Louis XV 는 1722년 자신의 대관식용 왕관을 리전트 다이아몬드로 제작했으며 마리 레슈친 스카 여왕은 이 다이아몬드를 머리장식으로 사용하기도 했고 루이 16세역시 대관식에 리전트 다이아몬드로 만든 왕관을 썼고 마리 앙투와네트 여왕도 리전트 다이아몬드로 검정 벨벳 모자를 만들어 쓰기도 했다.

 

 

당시 유럽에서 가장 크고 아름다웠던 리전트 다이아몬드는 프랑스 왕실의 위엄을 상징하는 대표적인 왕실의 보석이 되어 전해져 내려오게 되었다. 그리고 프랑스 국왕의 손에 들어온 리전트 다이아몬드는 이후 격변하는 프랑스와 그운명을 같이 하게된다. 프랑스 대혁명의 소용돌이에 휘말리던 1792년 프랑스 왕가에 있던 보물 대부분이 도난 당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몰론 도난당한 보석들중에는 리전트 다이아몬드도 포함되어 있었다. 도난 사건이 발생한지 15개월후 다행이 잃어버린 프랑스 왕실의 보물이 발견되었고 그때 리전트 다이아몬드도 발견되어 다시 제자리를 찾아오게 되었다. 그러나 프랑스 혁명이후 정권을 잡은 총재 정부는 전쟁의 재원을 마련하는데 막대한 자금이 필요했고 이런 위기를 극복하기위해 리전트 다이아몬드를 베를린의 은행가인 "트레스코프"에게 담보로 잡히고 4백만 프랑을 차입하게된다.

 

 

 

1년후 총재 정부는 모든 빛을 청산한후 리전트 다이아몬드를 다시 프랑스로 찾아오지만 그것도 잠시 또다시 네델란드 은행가 "반데르베르겜"에게 다이아몬드는 담보로 잡혀 다이아몬드는 또다시 프랑스를 떠나게된다. 하지만 이후 1800년 나폴레옹은 마침내 모든 담보금을 지불하게 되었고 권력과 함께 리전트 다이아몬드를 갖을수 있었다. 리전트 다이아몬드를 부적처럼 생각했던 나폴레옹은 자신의 칼자루에 리전트 다이아몬드를 달고 다녔다. 또한 1940년 독일이 프랑스를 침공했을때 많은 예술품과 보석들이 도난 당했지만 이런위험속에서도 리전트 다이아몬드는 어느집 벽돌속에 잘숨겨진 채로 전쟁을 피해갈수 있었고 전쟁이 끝난후 무사히 파리로 돌아 왔다고 한다.  지금은 프랑스의 국보로 지정되어 루브르 박물관 아폴로 관에 진열되어있다.  

 

 

 

 

탐욕과 죽음 그리고 파멸과 저주로 얼룩졌던 과거를 이겨내고 한나라와 운명을 같이 했던 프랑스의 리전트 다이아몬드, 리전트 다이아몬드가 더욱 아름다운 것은 파란만장한 역사를 무사히 이겨내고 지금까지 남아 있을수 있었던 그 놀라운 생명력 때문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