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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프라이즈

고흐가 즐겨 마셨다는 술 압생트 Absinthe [악마의 유혹][서프라이즈]

카페 탁자위에 있는 투명한 술병

 

 

에메랄드빛의 한장의술 아무나 흉내 낼수없는 기괴한 노란색과 파란색의 이 정물화는 천재화가

고흐 Vincent van Gogh 의 작품이다.

 

 

 

우리는 이그림에서 평화로운 한때의 카페를 상상하지만 사실 이그림안에는 엄청난 파장을 몰고올 숨겨진 비밀이 있었다.

 

1905년 8월 28일 프랑스

이날 프랑스 인들은 끔찍한 살인사건 소식에 주목하고 있었다. 시골마을 농부인 장 랑프레 바로 이남자가 최대의 살인사건을 일으켰던 장본인으로 밝혀졌는데 아내랑 사소한 시비가 붙었던 농부는 말다툼끝에 화를이기지 못해 자신의 아내를 총살했고 총송을 듣고 달려온 딸아이마저 그자리에서 쏴버린것이다. 사건 발생직후 총성을 들은 주민의 신고로 경찰에 연행되어간 그는 결국 최후의 심판을 기다리게되었다. 그리고 재판이 시작된 1906년 2월 23일 재판에 참여했던 의학자가 농부편에서서 뜻빡에 변론을 했다. 주장은 즉 농부는 환각에 의해 살인은 저질렀다는것이었다. 스위스 심리학자 엘버트 역시 이사건은 압생트 Absinthe 에 의한 최후의 광기였다고 증언하면서 프랑스는 혼란에 휩쌓였다. 거론된 압생트는 술에 한종류이기 때문이었다.

 

 

 

그렇다면 압생트가 어떤술일까?

 

압생트는 18세기후반 프랑스출신의사 피에르 오드넬이 편백나무와 박하향을내는 히솝과 향쑥을 이용해서 만든 술이 아닌 치료용 약물이었다.

 

히솝 [Hyssop] 중앙아시아와 남유럽이 원산지인 허브의 한종류

향쑥 [Wornwood]신경을 마비시키는 성분을 가진 풀

 

하지만 이 압생트의 처방전이 당시 유명한 주류업체의 손에 들어가면서 어이없게도 알콜도수 70~80%를 함유한 술로 둔갑한것이었다. 이후 약이 아닌 술로뒤바뀐 압생트는 주 성분인 향쑥이 특별이 돌보지 않아도 공터나 모래 자갈밭에서도 잘자라는 원료였기때문에 매우 저렴한 값에 판매 되었고 값이 저렴한 만큼 서민들에게 급속도로 보편화 되었다. 때문에 이술은 단순한 술이 아니라 프랑스 역사의 한 시기를 대표할 정도의 국민주였다. 그러나 희대의 살인사건에 술이 거론되면서 의학자는 물론 각기각층에서 이 압생트에 주목하게되었고 술에 숨어온 무서운 진실이 그모습을 드러냈다. 논란속에서 압생트 성분을 토끼의 정맥에 주입했던 아놀드 교수는 실험결과 토끼과 자율신경계에 심한 흥분을 느껴 의식장애와 간질 경련을 일으키는 것을 확인했고 반복적으로 장기간 주사했을때는 중추신경계에 영구적인 장애를 초래한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다시말해 사람이 압생트에 중독될경우에 심각한 환각을 일으키게 된다는것을 증명한것이었고 이것은 곧 살인사건의 주범인 농부가 압생트 중독으로 환각에의해 살인을 저질렀다는 충격적인 발언을 증명하는것과 같다. 

 

 

 

그런데 이사건으로 부각되는 인물이 있었다.

 

그는 바로 천재화가 빈센트 반 고흐였다. 1886년 파리에온 고흐는 당시 서민들에게 유행하는 압생트를 처음 접하게되었고 가난한 미술가 였던 고흐에게 값싼 독주 압생트는 그를 매료시키기에 충분했다. 그렇게 서서히 고흐는 압생트에 중독되고 말았던 것이었다. 의학자들은 고흐의 압생트 중독 흔적을 그의 작품곳곳에서 찾아볼수 있다고 주장하며 파리에 있을당시 고흐가 그렸던 작품들을 결정적인 증거를 제시했다. 고흐작품의 특징으로 불리는 노란색 바로 이것이 의학자들이 말한 고흐의 압생트 중독 증거였는데 압생트의 성분중에는 시신경을 손상시키는 테레반이라는 유도체가 포함되어있으며 압생트에 중독된 고흐가 바로 이 유도체의 영향을 받아 시각장애 중 하나인 노란색 집착증 즉 황시증에 걸렸다는 논리였다.

 

 

 

 

 또한 일반적으로 압생트를 많이 마시면 무경련성 착란이라는 내면적 혼란을 격는 발작을 하게되는데 이는 극심한 환각이나 환청,착시 현상에 빠지는것으로 발작중에 일어났던일을 전혀 기억하지 못하는 증상이며 이 증상역시 고흐가 앓았던 병과 일치했다. 이를 근거로 고흐의 병을 분석한 의학자들은 미술가 반고흐가 자신의 귀를 자른것이나 또 그가 스스로 죽음을 맞이한 것도 압생트 때문이라고 주장했고 고흐의 죽음은 이후에도 진실논란이 이어져왔다.

 

 

Edouard Manet

 

그런데 고흐의 사연을 밝히던중 뜻밖에 압생트를 찬미한 예술가가 고흐뿐만이 아니라는 사실이 밝혀졌다. 고흐와 동거생활을 했던 고갱은 물론 인상파 화가 마네와 피카소 물랑루즈의 화가 로드레크역시 고흐와 같이 압생트를 매일같이 즐겼다는것이었다. 또한 당시 활동했던 소설가 어니스트 헤밍웨이 검은 고양이의 애드거 앨린포 도 압생트에 열광했고 심지어 오스카 와일드는 보헤미안을 상징하는 술이라고 떠받들고 압생트의 환각 상태를 즐겼다고 한다. 그리고 이들역시 화가들이 그러했듯이 압생트를 자신의 소설속에 묘사하여 상징주의 문학을 부흥시켰다.

 

 

그중 천재시인 아르튀르 랭보는 "푸른빛이 도는술이 가져다준 취기야 말로 가장우아하고 하늘하늘한 옷이오" 라고 찬사를 표할정도였다. 이렇듯 헐벗은 예술가들이 싼값이 구할수 있었던 압생트는 고희의 죽음이 거론된 후에도 고흐의 술, 미치광이 술로 부르게되며 예술가들이 드나드는 파리의 뒷골목에서는 천국으로 통하는길로 불리고 있었다. 하지만 프랑스 예술가 에밀 졸라만은 이러한 사회상을 고발하며 압생트야 말로 이나라에서 벌어지는 흉악범죄의 최대 원인이라고 주장하며 나섰고 에밀 졸라에게 동조하는 사람들이 늘면서 압생트가 악마로 표현되는것은 물론 정치인들이 병속에 광기라는 딱지를 술병에 붙여 경고 하기에 이른다.

 

그런뒤 프랑스를 중심으로 유럽곳곳에 퍼져갔던 압생트는 1910년에 네덜란드가 1912년에는 미국이 그뒤를 이어 압생트의 판매를 금지시켰고 프랑스는 제 1차 세계대전이 시작되고 나서야 판매를 금지했다. 그렇게 압생트는 전 세계의 불법주류로 전락하고 말았다. 하지만 약물처방전을 임의로 도용해 압생트를 탄생 시켰던 주류 회사가 유해한 성분과 중독성의 원인인 향쑥을 제거하고 70도였던 알콜 도수를 40도로 낮추어 재출시를 했다. 그렇게 압생트는 40년만에 부활했고 세상에 다시 모습을 드러냈다.

 

 

 

예술가들의 생명수로 굴림하며 마법의 술로 통했던 압생트! 환각과 도취의 힘을 유감없이 발휘했던 이술은 아이러니 하게도 인상파 미술, 자연주의, 상징주의 문학을 낳은 술로 평가도 받지만 당대 예술적 기현상을 낳았던 압생트는 유감스럽게도 한시대를 검개물들인 악마의 유혹이자 치명적인 술인것은 부정할수 없을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