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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프라이즈

메사 베르데 Mesa Verde 사라진 선조 아나사지족 [서프라이즈]

미국 중서부 콜로라도 주 남쪽끝 가파른 협곡

 

메사 베르데 [Mesa Verde]

 

가파른 절벽 아래, 사암 거주지 사람이 살았던 확연한 흔적들

 

놀라운 석조 건축물에 살았던 고대인들은 누구였을까? 왜 절벽위에 집을 건축했던 것일까? 과연 그들은 어디에서 왔으며 어디로 사라진 것일까?

 

 

 

 

 

1888년 12월 미국 콜로라도주 메사 베르데 고원, 카우보이 리처드 웨더릴과 찰리 메이슨은 잃어버린 소를 찾고 있었다. 한참동안 소를 찾아다니던 카우보이들은 자칫 절벽아래로 떨어질뻔 했는데 끄때였다 두 사람은 건너편 협곡아래 놀라운 광경을 보게된다. 한눈에도 그너비를 가늠할수없을 정도의 대규모의 절벽마을 거대한 미로처럼 들어선 집들, 집안에는 마치 어제밤까지 살았던 사람이 외출을 나간듯 방의 물건들과 석조 도구등 가사용도구들이 그자리에 있었다. 그러나 그어디에도 이런 집기들을 사용했을 사람들이 보이지 않았는데일을 하던 남자들과 요리를 하던 여자들 그들은 왜 하던일을 중단하고 어디로 간것일까? 그렇게 메사 베르데는 고대의 사람이란 뜻의 인디언어 아나사지 [Anasazi] 란 이름이 붙여지면서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Cliff Palace

 

카우보이들에 의해 세상에 알려진 절벽궁전 [Cliff Palace] 높이 30m, 너비 90m, 4층 규모의 건축물로 200여개 방으로 구성된 절벽 궁전은 말하자면 고대 고층아파트 지금까지 모두 3개가 발견되었고 각각의 절벽궁전에는 약 250여 명이 거주 한다고 가정, 총800여명의 사람들이 동시대에 살았을거라고 보고 되고있다. 또한 수많은 고고학자들은 유적지 전역에서 발견된 농경지와 옥수수, 목장등의 유물들을 통해 아나사지 족들이 농사와 사냥으로 생계를 이루며 8세기부터 13세기 동안 거주했다고 추정했다. 더불어 오늘날 미국 인디언 원주민의 선조를 찾은것이라며 환영했고 지금도 잃어버린 미국 인디언들의 문명의 끈을 이을수있다는 가능성을 열고 연구를 지속하고 있다. 그만큼 절벽궁전의 발견은 콜럼버스가 아메리카 대륙을 발견한 1492년부터 시작된 미국역사를 다시써야하는 확실한 증거였던 것이다.

 

 

 

 

가뭄

 

그러나 수많은 학자들의 연구발표에도 절벽 궁전이 발견된 100여년이된 지금까지도 아나사지 사람들의 실종에관한 의문은 여전히 남아있다. 그들은 왜 사라졌을까? 우선 수많은 학자들이 공통적 견해는 아나사지 사람들이 죽은것이 아니라 집을 버리고 떠났다는 점이다. 하지만 그 의견에 대해서는 의견이 불분명했다. 수세기동안 대다수의 학자들은 아나사지 족들의 실종을 자연적 영향 환경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그 근거의 실마리는 가뭄이었다. 농사로 생계를 일었던 아나사지 족에게 가뭄은 곧 흉작을 의미했고 흉작은 사람들에게 굶주림과 전염병으로 이어져 결국 죽음과 이주의 이유라는 추론이다. 실제로 나무의 나이테를 조사한 고고학자는 서기 12세기초 20여년간의 큰 가뭄이 발견되었다. 하지만 아나사지 지역에는 댐과 석조운하 등의 관개수로 체계가 만들어 져있어 사람들에게 충분한 물을 공급하는 충분한 조건을 갖추고 있었다고 한다. 설사 가뭄과 기근에 떠났다고 가정한다고 해도 생명과 같은 음식을 두고 떠났다는것은 어떻게 설명할수있을까?

 

 

 

 

사회적 요인

 

한편 또다른학자들은 아나사지 족의 실종원인은 외부와의 전쟁등 사회적 요인으로 뽑았다. 비교적 안전해보이는 주거지를 마련했다는 점을 비롯해 4층구조의 궁전속에 방이무려 200여개가 넘음에도 계단과 통로하나 없이 미로같은 구조를 건축해 필요할때마다 이동식 사다리로 출입했다는것은 그만큼 그들이 외부 침입자를 의식하며 살았다는 증거라는 주장이다. 하지만 이주장에도 허점은 있었다. 우선 외부 침입으로부터의 공격흔적이 전혀 없다는것 그리고 적대관계의 부족이 침략한것이라면 침입자들은 왜 음식과 귀중품들을 왜 그대로 두었을까 하는점이다. 그런데 새로운 추론이 나타났다. 그실마리는 거대한 절벽 궁전의 건축과정속에서 실마리를 찾을수 있다는데

 

1940년 동부 애리조나 유적을 탐사중이던 한 고고학자는 대단한양의 보물이 있는 깊은 방을 발견한다. 메사 베르데에서 발견된 이 유골은 인간의 유골중 가장 부유한 것으로 시체 옆에는 다수의 색칠된 그릇들과 400개의 돌화살촉, 터키옥으로 만든 부적등 특별한 문양들의 유물이 발견되었다. 모두 이 유골이 당시 사회적 위치를 나타내는 유품들이었다. 이를 근거로 고고학자는 이유골이 아나사지 족 사람들을 노예로 삼아 강제로 그 거대한 건축물을 만들게한 인물이라고 주장했는데 그는 정말 아나사지족을 정복한 외부 침입자였을까? 그로 인해 아나사지족이 정복당했었다면 강압적인 노동력 착취가 사람들을 떠나게만든 진짜이유는 아니었을까?

 

 

 

어떤 고고학자는 단지 하나의 사건으로 사회전체를 판단할수 없다며 아나사지족의 실종원인을 다른방식으로 접근했다. 그의 주장에 따르면 모든 요인들이 유기적으로 결합되고 또 산화되어 결국 붕괴를 야기시켰다는 것인데 다시말해 농업기술의 발달로 수확한 곡식은 처음에는 급속한 경제 성장을 했지만 무분별한 계발로 파괴시킨 환경으로 인해 가뭄등의 자연재해를 입히기도했고 때로는 이런 자원들이 외부 침입자의 목표물이되어 정복당할수도 있다는것이다. 결국 농부들은 가뭄과 기근, 외부 침입들으로 인해 떠났고 노동력을 상실한 상류층도 곳 붕괴되어 떠났다는 것이다. 모든 가설을 인정한다해도 굼주림에 떠났다는 이들이 남겨진 음식들과 집기들은 어떻게 설명할수있을까? 그리고 그어디에도 침입당한 흔적이 없는것은 어떻게 된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