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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프라이즈

희대의 하이재커 hijacker D.B쿠퍼

 

 

 

1971년 투수감사절을 하루 앞둔 11월 24일 오후 4시 35분

 

시애틀 - 타코마 행 노스웨스트 오리엔드 에어라인 보잉 727기가 이륙을 준비하고 있었다.

 

비행기에는 승객 36명과 승무원 6명이 탑승 했었고 추수 감사절을 앞두고 승객들은 설렘과 흥분으로 가득차 있었다.

 

그런데 잠시후 비행기는 정체불명의 사나이에게 납치 즉 하이잭 HiJack 을 당했다.

 

 

하이잭 HiJack

보통은 하이재킹이라 한다. 어원은 미국의 금주법 시대에 밀매자의 위법 주류운반차를 숨어서 기다렸다 탈취하면서 하이잭 이라고 소리치는 약탈자들이 있었던 데에서 유래되었다. 하이재킹 가운데 항공기 납치 사건이 압도적으로 많아 하이재킹이라고 하면 스카이 재킹을 연상하게 되지만 간혹 열차, 기선, 버스 등 운송수단에 뛰어들어 납치하는것도 포함된다. 1968~1973년 절정을 이룬 하이재킹(스카이 재킹)은 1969년 한해만도 82건이 발생하였다.

 

 

 

당시 하이잭은 일반적으로 정치적인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수단으로 사용되어 왔으나 노스웨스트 오리엔드 에어라인 보잉 727기 납치범의 목표는 달랐다. 고성능 폭탄을 소지 하고 있던 그는 승객들을 풀어주는 대신 현금 20만달러와 낙하산 4개를 요구했다. 다른 하이재커들과는 달리 그의 목적은 다른아닌 돈이었다. 사건발생 1시간후인 오후 5시 45분 납치범이 요구한 현금 20만달러와 낙하산4개가 비행기 안으로 들어왔고 승객들은 무사히 풀려날수 있었다. 하지만 기장을 비롯한 승무원들은 납치범과 함께 다시 이륙하게 되었다. 사건발생 3시간 10분경과된 오후 7시 45분, 비행기가 오리건주 포츨랜드 상공을 날고 있을 무렵 납치범은 낙하산을 타고 돈과 함께 뛰어 내렸다.  초겨울에 춥고 강한 바람을 뚫고 그렇게 납치범은 사라졌으며 그는 그 어떤 단서 조차 남기지 않았다. 

 

 

 

 

 

그렇다면 비행기 납치범은 과연 누구인것인가? 

이 희대의 하이재커를 잡기위해 FBI의 대대적인 조사가 시작되었다. FBI는 범인이 쓴 탑승카드를 통해 그의 이름이 댄 쿠퍼임을 알아 냈으나 FBI로 부터 범인의 이름을 가장먼저 알아낸 한 언론기자가 이름을 다니엘 B 쿠퍼로 잘못 알아듣고 보도 하는 바람에 이후 범인의 이름은 D.B쿠퍼 (D.B.Cooper)로 잘못 알려지게 되었다. 또한 탑승카드에쓴 범인의 필체는 위조된 것이었고 댄쿠퍼 역시 가명으로 밝혀졌고 수사는 점점 어려워 졌다. 하지만 당시 D.B쿠퍼의 얼굴을 가장 가까이서 볼수 있었던 승무원 플로렌스 샤프너의 증언을 통해범인의 몽타주를 완성할수 있었다. D.B쿠퍼를 찾기위한 대대적인 수색작업이 시작되었지만 18일간의 수색작업에도 그의 흔적은 그어디에서도 찾을수가 없었다. 그렇게 희대의 하이잭 사건은 점점더 미궁속으로 빠져드는듯했다. 

 

그런데 사건발생 4개월후 또다른 하이잭 사건이 발생했다.  

범인은 덴버행 보잉 727기를 납치한후에 현금 50만달러를 챙겨 도주하였는데 범행 수법이 D.B쿠퍼와 유사한점이 있어 FBI 일각에서는 이범행이 D.B쿠퍼의 범행일 것이라고 추측했다. 사건발생 2일만에 범인은 지문감식과 필체검사등을 통해 검거 되었는데 그의 이름은 리차드 맥코이 주니어 였다. 그는 비행기 납치범들을 수색하는 내셔널 가드 소속의 파일럿 출신으로 배트남전에도 참전한 베테랑 조종사였다. 그는 45년형을 선고 받고 수감되었지만 자신이 D.B쿠퍼라고 묻는 질문에는 긍정도 부정도 하지않아 의혹만 증폭될 뿐이었다. 그런데 얼마후  리차드 맥코이 주니어는 탈옥을 감행했고 3개월간 도망다니다가 결국 FBI 요원이 쏜 총에 맞고 사망하고 만다. 그의 죽음으로 그가 진짜 D.B쿠퍼였는지 알아내는일도 불가능 해졌다. 

 

그런와중에 자신의 남편이 D.B쿠퍼라고 주장하는 인물이 나타났다.

한여인은 자신의 남편인 듀안 웨버가 D.B쿠퍼가 납치했던 시애틀 - 타코마행 비행기 티켓을 가지고 있었으며 평고 비행기에서 뛰어내리는 악몽을 자주 꾸었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FBI 얼굴인식 프로그램을 통해 듀안 웨버와 D.B쿠퍼의 몽타주를 비교한 결과 3,000장의 용의자 사진중에서 뷰안 웨버가 가장 일치한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듀안 웨버 역시 지난 1995년에 사망해 진위 여부를 확인할 길이없다. 

 

 

 

 

당시발견된 화폐

 

 

그러던중 D.B쿠퍼의 행방을 밝혀낼 새로운 단서가 발견되었다. 

1980년 2월 당시 8살이었던 브라이언 인그램이란 소년은 오리건주 포틀랜드 콜롬비아 강가에서 5,800 달러가 든 가방을 발견했는데 놀랍게도 그돈에 새겨진 일련번호가 D.B쿠퍼가 가져간 20만 달러중 일부와 일치 했다. 이돈가방이 발견되면서 당시 D.B쿠퍼가 낙하산을 타고 내려오던중 가망했을 가능성에 주목했다. 그 첫번째 증거로 D.B쿠퍼가 사용했던 낙하산 가운데 하나가 지상 훈련용으로 공중에서는 펼쳐지지 않는것이었고 두번째는 당시 10,000피트 상공에서 뛰어내릴 때의 기상조건이 매우추운 겨울의 바람부는 날씨였던점을 감안할때 동사했을 가능성도 있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세번째 증거로 D.B쿠퍼가 가져간 나머지 돈 역시 시중에 전혀 유통되지 않은것으로 보아 그는 죽음이라는 처절한 죗값을 치른것은 아닐까 하는 추측자들도 생겨 났다. 그러나 돈가방이 발견된 콜롬비아 강가를 수색해봤지만 D.B쿠퍼의 시신도 낙하산이나 또 다른 증거품도 발견되지 않아 그의 죽음도 여전히 미스터리한 의문으로 남아 있다. D.B쿠퍼 사건이후 하이잭을 방지 하기위해 각 공항마다 금속 탐지기가 설치 되었고 보잉 727기 리어도어는 비행 도중에 내려가지 않도록 설계가 변경 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