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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프라이즈

에이트 빌로우의 타로와 지로 [서프라이즈]

 

 

일본 훗카이도 아칸코

 

그곳에는 사람들이 자주 찾는 아담한 2개의 호수가 있는데

 

타로 호수와 지로 호수 

 

와카나이 공원의 명물인 쌍둥이 케이블카의 이름도 역시 타로호와 지로호다

 

심지어는 일본에 유명한 원숭이 조련사의 이름도 타로 원숭이는 지로 이다.

 

일본에는 타로와 지로라는 이름을 가진 명물이나 유명인이 많을 정도로 잘 알려진 이름인데

 

나고야 항에도 타로와 지로 라는 이름을 가진 개 2마리가 있다.

 

타로와 지로는 우표나 기념주화 그리고 인형으로 만들어질 만큼 많은 일본인의 사랑을 받고 있는데

 

과연 타로와 지로에게는 무슨 사연이 있는것일까?

 

 

 

 

 

1956년 11월 일본 나고야항 탐험선 소우야 호가  출항준비를 하고 있었다. 1957년 7월부터 1958년 12월 까지는  국제 지구 물리 관측년으로 일본을 비롯해 64개국이 공동으로 남극에서 지구의 기상, 전리층, 빙하등을 공동으로 관측했는데 이를위해 일본 최초로 결성된 남극탐험대는 탐험선 소우야 호를 타고 남극으로 향했다. 석달후 마침내 남극 탐험대는 무사히 남극에 도착했다. 모두 11명으로 구성된 1차 남극 탐험대는 이제막 20살이 넘은 최연소 대원 키타무라도 포함되어 있었는데, 그는 어렸을때부터 남극 탐험을 꿈꿔 왔었고 이제막 그꿈이 실현되는 순간이었다. 남극에 도착한 탐험대는 쇼와기지를 건설하고 베이스 캠프로 삼았으며, 탐험대중에서 니시보리 탐험대장과, 무라야마, 키타무라로 구성된 특별 탐사대는 쇼와기지에서 300km 떨어진 곳에 또다른 기지를 설치하고 남극의 지하자원을 조사하게 되었다. 남극을 다니며 연구를 해야하는 탐사대에게 가장 필요했던 것은 바로 그들의 발이 되어줄  눈썰매였다.

 

눈썰매 개들을 돌보는 일은 탐사대에서 가장어린 키타무라가 맏게되었다. 그런데 유독 다른 개들에 비해 체구도 작고 허약해보이는 사할린 개 두마리가 무리와 어울리지 못했다. 키타무라는 항상 무리에 뒤쳐져 있는 사할린 개 두마리를 더챙겻으며 타로와 지로라는 이름도 지어줬다. 그뒤로 타로와 지로는 항상 키타무라를 따라다녔고 유난히 자신을 잘따르는 타로와 지로에게 키타무라는 더많은 애정을 가지게 되었는데 키타무라가 휘파람을 불면 어디든지 달려올정도로 셋은 점점더 각별한 사이가 되어갔다. 하지만 탐사대는 영하 40도를 밑도는 추위와 싸워야 했으며 시시각각으로 변하는 악천후를 뚫고 연구에 매달려야만 했고  부족한 식량으로 인해 영양 결핍에 걸린 대원들은  체력의 한계에 부딪쳐 건강에 이상신호가 오게 되었다. 무엇보다도 가족에 대한 그리움과 외로움이 남극에서의 생활을 점점더 극한의 상황으로 몰고 갔지만 연구는 계속 진행되었는데 키타무라와 타로 지로는 서로를 의지하고 힘든 남극 생활을 견뎌가며 탐험을 계속 할수 있었다.

 

 

 

 

 

 

 

 

 

 

그런데 연구가 거의 막바지로 접어든 어느날 탐험대는 남극에 거대한 눈 폭풍이 몰려온다는 예보를 듣게 되었고 갑작스런 기상 악화로 인해 특별탐사대는 철수 명령을 받게 되었고 막바지 단계에 있는 연구를 포기한채 돌아가야하는 대원들은 실망이 컸다. 그런데 키타무라는 더욱 곤란한 일이 생겼는데 규정상 2차 탐험대를 위해 눈썰매 견들을 두고 가야 했기 때문에 키타무라는 타로, 지로와 헤어져야 했다. 떠나는 키타무라의 발걸음은 무거웠지만 결국 타로와 지로는 남겨졌다. 이틀후 키타무라 일행이 본부를 향해 철수 하던중 키타무라 일행은 본부로 부터 눈폭풍이 계속 몰려오고 있다는 무전을 받고 모두들 불안에 떨었는데 키타무라는 자신보다도 눈폭풍에 떨고 있을  타로와 지로걱정에 빠져 있었다. 그런데 순간 키타무라의 뇌리에는 무엇인가 한가지 생각이 스쳐지나갔고 키타무라는 곧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하지만 주위는 온통 하얀눈으로 덮혀있고 조용하기만 했다. 그런데 바로 그때 놀랍게도 눈속을 헤치며 타로와 지로가 달려왔다. 키타무라를 쫓아 150km를 달려온 타로와 지로 그리고 그들을 아끼는 키타무라를 보고 대장은 그들을 함께 대려가기로 결정하는데 다음날 타로와 지로를 함께 데리고 나섰지만  본부로 귀환하는데는 쉽지 않았다. 그런데 갑자기 눈이 멈추고 주위가 고요해졌다. 무슨일인지 타로와 지로도 불안해 했고 무언가 이상한 느낌이 감돌았는데 거대한 눈 폭풍이 키타무라 일행을 향해 집어 살킬듯한 기세로 몰아닥쳤고 결국 대원들은 모두 눈퐁풍속으로 사라지고 말았다. 얼마후 정신을 잃고 쓰러진 키타무라 주위를 타로와 지로가 맴도나 싶더니 이내 어디론가 사라져 버리고 말았는데 키타무라는 그렇게 죽음을 맞이할것만 같았다. 하지만 병원에서 깨어난 키타무로 제일먼저 타로와 지로를 찾았는데 그들은 보이지 않았다. 키타무라는 타로와 지로가 죽었을 거라는 소식에 크게 상심할수 밖에 없었다. 

 

그리고 1년후 타로와 지로를 잃고 사고에서 살아남은 키타무라는  일본으로 돌아왔고 여전히 타로와 지로를 그리워 했다. 그러던 어느날 키타무라는 편지를 받고 3차 남극탐험대에 가기로 결심을하고 남극으로 가게 되었다. 새로운 눈썰매 개들이 키타무라를 기다리고 있었고 개들을 보자 키타무라는 타로와 지로 생각이 더욱 간절해졌는데 하지만 새로운 임무를 수행하기위해  키타무라는 특별 탐사기지를 향해 한참을 달려가고 있었다. 그러던중 키타무라는 하얀눈속에서 무엇인가를 발견하고 썰매를 멈춰 세웠는데 놀랍게도 그것은 키타무라가 타로와 지로에게 직접만들어준 목걸이 었다. 목걸이를 발견하고 슬픔에 잠긴 키타무라는 예전기억이 떠올라 가슴이 아팠고 타로와 지로 생각이 간절해져 1년전 그때처럼 휘파람을 불었다. 그런데 바로 그때 멀리서 개 두마리가 달려오는 것이 아닌가? 키타무라는 자신의 눈을 의심하지 않을수 없었는데 조금 야윈듯한 몸짓, 윤기가 없어진털, 그리고 야생동물의 눈빛을 하고 있었지만 분명 1년전 죽은 줄 알았던 타로와 지로였다. 1년만에 다시 만나게된 키타무라와 타로 지로 과연 어떻게 된것일까? 키타무라가 조난당한 그날 타로와 지로는 키타무라를 살리기위해 구조요청을 하러 간것이었고 그사이 키타무라는 무전연락을 받은 구조대에게 간신히 구조되었으며 그가 이미 떠나고 없는 자리로 돌아온 타로와 지로는 이곳을 떠나지 못하고 계속 맴돌면서 1년동안을 기다려 왔고 그러다가 귀에 익은 휘파람 소리를 듣고 달려왔던 것이다. 키타무라를 기다리며 1년동안 남극에서 살아남은 타로와 지로의 감동적인 이야기는 일본 전역에 알려져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울렸고 이후 타로와 지로는 남극탐험 활동을 계속하다가 키타무라 품에서 죽음을 맞이하게 되었다. 

 

 

 

타로가 지로가 죽은뒤에 일본 나고야 항에는 타로와 지로를 기리는 동상이 세워졌으며 매년 1월14일은 <사랑과 희망과 용기의날>로 정해 극한에 상황에서도 삶에 희망과 용기를 잃지 않았던 타로와 지로의 뜻을 되세기고 있다고 한다. 그리고 1983년에는 타로와 지로를 이야기로한 영화가 만들어져 14년간 일본영화 흥행 1위를 차지했고 2006년에는 헐리우드 영화로도 리메이크 되어 <에이트 빌로우> 전세계인들에게 감동을 선사하기도 했다. 타로와 지로 그리고 키타무라의 깊은 애정은  오늘날까지 뜨거운 감동으로 남아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