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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프라이즈

모나리자의 실제모델 [서프라이즈]

 

미소를 머금은 여인이 깊고 그윽한 눈으로 당신을 바라본다  세상에서 가장 신비로운 미소로 유명한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모나리자 

 

그러나 모나리자의 실제 모델이 누구인지는 오랫동안 수수께끼로 남아 있었는데

 

2011년 충격적인 주장이 제기된다. 

 

모나리자의 실제 모델은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제자이자 동성연인 이었던 살라이 라는것이다. 

 

이탈리아 화가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그린 모나리자 입에는 신비로운 미소가 누군가를 그윽하게 바라보는 눈동자 마치 살아있는듯 생생하고 자연스러운 얼굴의 모나리자는 세계 최고의 명화중 하나로 손꼽힌다. 그러나 모나리자의 실제 모델이 누군지에 대해서는 오랫동안 논란이 되어 왔다. 피렌체의 거상 프란체스코의 아내 리자 게라르디니 라는 썰, 교황의 질부이자 밀라노의 귀족인 카테리나 스포르차 라는 썰,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자신의 모습을 그린 자화상 이라는 썰등 여러가지 추측들만 난무했을뿐 모나리자의 실제 모델은 수수께끼로 남아 있었다.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세례요한

 

그러던 2011년 뜻밖의 주장이 제기된다. 모나리자의 실제 모델은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제자인 살라이 (Andrea Salai) 라는 것이다. 이탈리아 문화유산 위원회의 위원장 실바노 빈센티 Silvano Vinceti 는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제자 살라이를 모델로 모나리자를 그렸다고 공식 발표했다. 실바노 빈센티 위원장이 근거로 제시한것은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그림 세례 요한 이었다. 1516년에 완성된 세례 요한은 예수의 탄생을 예언한 세례 요한을 그린 그림이다. 짙은 어둠속에서 오른손 검지로 하늘을 가리킨채 신비로운 미소를 짓는 세례 요한의 모습을 담고 있다.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세례 요한을 그릴때 제자 살라이를 모델로 세웠다. 세례 요한의 얼굴은 제자 살라이의 얼굴인 것이다. 그런데 세례요한에 그려진 제자 살라이의 얼굴은 모나리자의 얼굴과 놀라울 만큼 일치 했다. 눈의 크기와 양옆으로 긴 눈매, 깊은 눈꺼풀과 볼록한 아래꺼풀 미간에서 코끝까지의 길이와 코의 모양, 입술 모양과 살짝 끝이 올라간 입꼬리, 미소 지을때 생기는 얼굴근육의 형태, 갸름한 턱과 볼, 얼굴에 비해 짧은 목선 까지 모나리자와 세례 요한의 얼굴은 놀라울정도로 일치 했다.

 

 

모나리자와 세례요한 비교

 

실바노 빈센티가 이끄는 연구팀이 모나리자의 눈을 특수 촬영해 분석한 결과 모나리자의 왼쪽 눈동자에서는 이니셜 L이, 오른쪽 눈동자에서는 이니셜 S가 발견되었다. 이는 레오나르도 다빈치 Leonardo da Vinci 의 이니셜 L과 제자 살라이 Andrea Salai 의 이니셜인S를 의미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당시 화가들은 왕이나 귀족의 의뢰를 받아 그림을 그렸고 그림을 완성한후 의뢰인에게 바쳤다. 그런데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그누구에게도 모나리자를 주지 않았고 사망할때까지 모나리자를 간직했다.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임종직전 제자 살라이에게 모나리자를 준다는 유언을 남긴다. 이탈리아의 문화유산 위원장 실바노 빈센티는 모나리자와 세례 요한의 얼굴이 일치 한다는 점 그리고 모나리자의 눈동자에 그려진 이니셜,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제자 살라이에게 모나리자를 유산으로 남겨주었다는 점을 근거로 모나리자의 실제 주인공이 제자 살라이라고 공식 발표 했다. 그런데 실바노 빈센티의 주장대로 모나리자가 제자 살라이를 그린 그림이라면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살라이를 건장한 남자로 표현한 다른 그림과는 달리 왜 모나리자만 여자로 그린것일까?

 

 

바쿠스, 살라이 스케치,세례 요한 (건장한 남자의 모습을 하고 있는 살라이)

 

실바노 빈센티 위원장은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동성연인인 살라이를 보호 하기위해 여자처럼 그렸고 이를 위해 모나리자를 끊임없이 수정했다고 주장했다. 모나리자는 1506년에 완성된 것으로 알려져 왔지만 사실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사망하기 직전인 1519년까지 모나리자를 계속해서 수정했다는 것이다. 1490년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자신의 포도밭을 경작하던 소작농의 아들 살라이를 보게된다. 그는 금발의 미소년이었던 살라이의 아름다움에 반했고 다른그림은 제쳐두고 주로 살라이의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살라이에게 푹 빠져버린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살라이를 모델로 한 그림들을 계속해서 그렸다. 그러자 그의 제자들 사이에서는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살라이에게 특별한 감정을 가지고 있다는 소문이 돌기 시작했다. 이전인 1476년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동성애 관계를 맺은 혐의로 체포되었다. 당시 이탈리아는 동성애자를 사형에 처할정도로 동성애에 대해 엄격했고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목숨이 위태로운 상황에 처하게 된다. 그런데 같은 혐의로 체포되었던 청년중 한명이 메디치 가문의 자제라는 이유로 석방되면서 레오나르도 다빈치 역시 운좋게 석방된다. 동성애자라는 이유로 고통에 시달렸던 레오나르도 다빈치, 젊은 시절 동성애 때문에 고통받았던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살라이를 사랑하는 마음을 들어낼수 없었다. 결국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살라이를 위해 선택한 방법은 살라이를 아름다운 여인의 모습으로 그리는 것이었다. 사랑하는 연인인 이었던 살라이를 보호 하기위해 여자로 그린것이다. 이탈리아 문화유산 위원회 위원장은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동성연인이었던 살라이를 그린 그림이 모나리자라고 주장했다. 

 

 

                           

참고자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