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서프라이즈

은반 위의 악녀 토냐 하딩 [서프라이즈]

 

 

1994년 1월 6일 미국 미시간 주 디트로이트 훈련을 마치고 나오던 피겨선수가 괴한에게 피습당하는 사건이 발생한다.

 

선수가 피습당하는 장면은 미국전역에 방송되었고 이장면을 본 미국시민들은 큰충격에 빠진다.

 

 

 낸시 케리건 Nancy Ann Kerrigan

 

괴한에게 피습당한 선수는 24살의 피겨 스케이팅 선수 낸시 케리건 Nancy Ann Kerrigan 이었다. 낸시는 1991년 독일 네이션스컵 금메달, 1992년 동계올림픽 동메달, 1992년 월드 챔피언십 은메달을 딴 미국에서 촉망받는 피겨선수 였다. 사건당일 낸시는 미국 디트로이트 경기장에서 전미 피겨 선수권 대회를 위한 최종훈련을 하고 있었다. 이대회는 한달뒤에 있는 동계올림픽 출전권이 걸린 중요한 대회였다. 그런데 훈련을 마치고 대기실로 가던 낸시는 괴한에게 피습당하고 만다. 그자리에 쓰러진 낸시는 무릎에 큰 부상을 당했고 선수생활에 최대 위기를 맞게된다.  

 

 

토냐 하딩 Tonya Maxine Harding

 

사건발생 일주일후 범인들이 체포된다. 범인을 저지른 셰인 스탠트션 에카르트 그리고 범행을 계획한 제프 질루리였다. 그런데 체포된 범인들은 한여자의 사주를 받고 피습사건을 저질렀다고 진술한다. 그여자의 정체는 놀랍게도 낸시의 라이벌인 토냐 하딩 Tonya Maxine Harding 이었다. 낸시와 1, 2위를 타툰 피겨스케이팅 선수 토냐 하딩  그녀는 카리스마 넘치는 연기와 파워풀한 점프로 큰주목을 받은 선수였다. 그녀는 난이도가 높은 트리플 악셀을 미국에서 최초로 성공하면서 미국 최고의 피겨스타가 된다. 그런데 토냐가 낸시 피습 사건을 사주했다고 주장한것이다. 게다가 범인을 저지른 사람이 토냐의 전남편과 현재 토냐의 보디가드라는 사실이 밝혀지자 토냐가 피습사건을 일으켰다는 의혹이 커지기 시작했다. 라이벌인 낸시가 전미 피겨선수권 대회에 출전하는것을 막기위해 큰부상을 입혔다는 것이다. 그러나 의혹의 중심에선 토냐는 자신은 낸시 피습 사건과 아무런 관련이 없다며 억울함을 호소했다.

 

어린시절 가난한 집에서 불행한 유년기를 보낸 토냐, 그녀의 아버지는 몸이 아파 일을할수 없었고 어머니가 대신 생계를 책임져야 했다. 가난에 허덕이던 어머니에게 삶의 유일한 희망은 토냐 였는데 토냐가 스케이팅에 재능이 있다는걸 알게된 어머니는 토냐를 미국 최고의 피겨선수로 만들기로 결심한다. 하지만 어머니는 어린 토냐를 혹독하게 훈련시켰고 어린토냐에게 미국 최고의 피겨선수가 돼야 한다고 강요했다. 어머니의 기대를 저버릴수 없었던 토냐는 고된 훈련을 묵묵히 견뎠다. 그결과 토냐는 1989년 독일 네이션스 컵과 스케이트 아메리카 대회에서 금메달, 1991년 전미 피겨 선수권 대회에서 금메달을 따면서 미국 최고의 피겨 스케이팅 선수로 주목받게된다. 토냐는 피겨의 여왕, 미국의 국민요정이라고 불리며 승승장구 했는데 그러던 1992년 토냐는 뜻밖의 위기를 맞는다. 낸시 케리건이 강력한 라이벌로 급부상한것이다. 토냐가 카리스마 넘치는 연기와 파워풀한 점프로 주목 받았다면 낸시는 관객을 사로잡는 아름다운 연기와 우아한 이미지로 큰 사랑을 받았다. 낸시는 토냐보다 높은 성적을 받았고 매경기마다 토냐를 앞지르게된다. 낸시가 눈엣가시 같았던 토냐, 토냐는 자신의 앞길을 막는 낸시를 증오하게된다. 

 

 

낸시 케리건피습

 

그러던 1994년 전미 피겨 선수권 대회를 앞둔 토냐는 극도의 불안감에 휩싸인다. 전미 피겨 선수권 대회에서 1,2위를 한 2명의 선수만이 동계올림픽 출전권을 얻는데 당시 최고의 기량을 자랑한 낸시 케리건과 떠오른 신인으로 주목받는 미셸콴이 유력한 우승 후보로 거론되었기 때문이다. 그누구보다 승부욕이 강했던 토냐, 그녀는 전미피겨선수권 대회에서 우승하기위해 라이벌인 낸시를 습격해라고 사주했다는것이다. 그러나 전남편의 주장과 달리 토냐는 자신은 낸시 피습사건과 관련이 없다며 혐의를 끝까지 부인했다. 경찰은 토냐가 사건에 개입했다는 증거를 찾지 못했고 사건에 관련된 범인 세명을 처벌하는것으로 사건을 마무리 짓는다. 결국 피습사건으로 무릎에 부상을 입은 낸시가 경기를 포기하자 토냐는 전미 피겨 선수권 대회에서 1등을 차지했고 1994년 릴레함메르 동계올림픽에 출전한다. 그러나 금메달을 노렸던 토냐는 8위라는 초라한 성적을 받고 만다. 올림픽이 끝나자 잠시 잠잠했던 낸시피습사건은 다시 이슈화 되었고 토냐가 피습사건을 사주했다는 기사들이 연일 쏟아져 나왔다. 토냐를 비난 하는 여론이 빗발치자 결국 토냐는 자신의 죄를 일부 인정한다. 자신의 전남편과 보디가드가 낸시를 습격했다는 것을알고 있었다는 것이다. 토냐가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자 미국 피겨스케이팅 연맹은 토냐가 스포츠맨십에 어긋난 행동을 한점, 피겨스케이팅 선수들의 이미지를 실추시킴점을 이유로 토냐의 선수 자격을 영구 박탈한다.

 

 

 

미국 피겨 역사상 최초로 손수 자격을 박탈당하는 불명예를 당했던 토냐 하딩 승부에 눈이 멀어 무모한 행동을 저질렀던 토냐 하딩은 결국 피겨인생의 막을 내리는 비참한 결과를 맞고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