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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프라이즈

안토니오 이노키와 무하마드 알리 세기의 대결? 최악의 졸전 (복싱과 레슬링)

 

 

1976년 6월 일본 도쿄

전세계인의 관심이 집중된 가운데 세기의 대결이 시작되는데

뜻밖에도 대결의 주인공은

세계적인 복싱 챔피언 무하마드 알리

일본 프로 레슬링의 전설 안토니오 이노키 였다.

 

"나비처럼 날아 벌처럼 쏜다"는 그의 유명한 말처럼 현란한 스텝과 빠른 스피드의 펀치 명석한 두뇌플레이로 주목받은 20세기 최고의 복서 무하마드 알리

그리고 일본 프로레슬링의 아버지라 불리는 역도산에게 발탁되어 연수베기라는 기술을 이용해 단번에 상대를 제압하기로 유명한, 우리에게는 박치기왕 김일 선수와의 대결로도 잘 알려진 전설의 프로레슬러 안토니오 이노키

그런데 1976년 두사람이 대결을 펼친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이는 단번에 세계적인 이슈로 떠오른다. 그렇다면 어떻게 종목이 다른 두선수가 대결을 펼치게 된것일까?

 

 

 

 

 

알리의 농담에 일본언론 헤드라인을 장식했다.  

알리는 스포츠 선수들이 모이는 한 파티에서 일본 아마추어 레슬링 협회 회장 이치로 야다를 만나게 되는데 알리가 동양선수 그 누구라도 자신을 이기면 백만 달러를 주겠다는 농담을 이치로 야다가 일본 얼론에 알리면서 알리가 동양 선수의 도전장을 기다린다는 기사가 대서특필되어 연일 일본언론의 헤드라인을 장식한다.

하지만 당시 사람들은 대적할 상대가 없는 무적의 챔피언 알리와의 경기를 아무도 받아들이지 않을것이라 생각했는데 그때 알리의 상대를 자처하며 나선게 바로 이노키였다. 사실이노키는 몇해전 다른선수와의 불화로 일본 레슬링 협회에서 퇴출되어 신일본 프로 레슬링이라는 새로운 단체를 설립했는데 단체의 흥행이 지지부진 하자 관심을끌 요량으로 알리의 대결을 받아들인것이다.

이렇게 두사람의 대결이 성사되자 프로레슬링과 복싱이 맞붙는 세기의 대결이라며 사람들의 기대감은 최고조에 오르는데, 당사자인 알리와 이노키역시 함께 기자회견을 가지는 자리에서 노골적으로 신경전을 벌이는등 분위기는 점점 고조된다.

이에 당시 경기에 걸린 파이트머니가 18억 엔으로 현재 한화가치로 약300억원에 달했으며 경기 티켓의 가격은 최대 30만엔 현재 한화가치로 약 500만원 까지 치솟음에도 도쿄 무도관의 전좌석이 매진되었고 경기장면을 전세계 34개국에 동시 생중계 하기로 하는등 이들의 경기는 그야말로 세기의 빅매치였다.

 

 

 

 

미리짜인 각본대로 진행될 예정이었다.

그런데 사실 두사람의 경기는 프로레슬링 처럼 미리짜인 각본대로 진행될 예정이었다. 알리가 이노키를 로프근처에 몰아 가짜 타격을 퍼부으면 이노키는 피를 흘리는척하고 이모습을 본 알리가 심판에게 경기 중지를 요청하며 등을 보이는 순간 이노키가 알리의 등으로 달려들어 경기를 끝내는 결말이었다. 심지어 알리가 마지막으로 외칠말 까지 준비해 두었는데

드디어 D-DAY 6월 26일 1만4천여명으로 가득메워진 일본 무도관에 알리와 이노키가 등장했고 전세계인이 지켜보는 가운데  경기가 시작되었다.

 

 

 

 

 

이노키가 실제 싸움을 하겠다고 선언

그런데 뜻밖에도 경기가 시작되자 두선수 모두 각본과 전혀 다른 모습을 보인다. 이노키는 경기 15라운드 내내 링에 등을 댄채 누워있을뿐이었고 알리또한 이노키 주위를 빙빙 돌기만 할뿐이었는데 도대체 어떻게 된것일까?

경기 몇일전 시합을 앞두고 이노키를 찾은 알리, 알리가 리허설을 하자고 하는데 갑자기 이노키가 실제 싸움을 하겠다고 선언한 것이었다. 사실 이노키는 애초부터 짜인 각본대로 경기하는것이 그다지 내키지 않았다.

특히 상대가 방심한 사이 뒤에서 공격하는 모습이 마음에 들지 않았는데 행여 이같은 모습이 일본의 영웅으로 불리는 자신의 이미지에 타격을 주지 않을까 걱정했고 고심끝에 그는 실제 싸움을 하기로 결심했던 것이다.

결국 알리는 그의 제안을 받아들였고 이에 양측은 프로 레슬링과 권투 대결의 세부 규칙을 정하기위해 회의를 시작하는데 하지만 두선수 간에 합의점을 찾기는 어려웠다.

결국 양측은 장장 4일에 걸친 회의를 했지만 상대를 껴안아 상대의 공격을 무력화 하는 클린치, 매트위에서 상대선수를 눕혀 꺽고 조르는 그래플링등 몇몇 프로 레슬링 기술을 금지하는 규칙에만 일부 합의 하는 상태로 경기를 치르게 된것이다.

이에 두사람 모두 서로에게 지기싫어 유리한 포지션만을 고집해 알리의 펀치를 피하기위해 링에 드러누운 이노키는 그의 다리만을 공격했고 알리는 이노키의 먼발치에서 연신 일어나 싸우라고 외칠뿐 제대로된 기술을 주고받지 못했던 것이다.

 

 

 

 

 

 

이노키알리포지션

그렇게 싸움같지도 않은 싸움이 15라운드 내내 이어졌고 경기는 맥없이 끝이난다. 그리고 경기결과는 싱겁게도 무승부였다.

무엇보다 기대했던 사람들의 실망은  이만저만이 아니었고 세기의 대결이라 이목을 끌었지만 결국 세기의 졸전이란 비난을 면치못한 이노키와 알리의 대결, 또한 이후 격투경기에서 두명의 선수중 한명이 누워있고 다른 한명이 서있는 상태를 이노키 알리 포지션이라 불리게 된다.

하지만 그럼에도 두사람의 위력은 엄청나 경기직후 알리는 다리에 혈전 수술을 받아 한달간 입원 해야 했으며 이노키는 오른발에 박리골절상을 입었다고 한다.

 

 

 

 

 

이종격투기의 시작?

또한가지 주목할만한 사실은 뜻밖에도 알리와 이노키의 세기의 졸전이후 서로다른 무술을 수련한 사람들이 대결하는 이종격투기가 세계적인 반향을 불러일으키며 인기 스포츠로 자리 잡게되었다고 한다.

세기의 대결로 시작해 최악의 졸전으로 끝난 알리와 이노키의 대결, 이를 계기로 인연을 맺은 두선수는 1998년 이노키의 은퇴식에 알리가 참석 하기도 했으며 2016년 알리가 사망하자 이노키는 누구보다 먼저 깊은 애도의 뜻을 표했다고 하는데

일본 기념일 협회는 이들의 경기를 기념해 매년 6월 26일을 세계 격투기의 날로 지정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