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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프라이즈

게르니카의 비극 <서프라이즈>

 

 

1937년 4월 26일 스페인 북부에 위치한 작은 마을, 게르니카 이날은 일주일에 한번 게르니카에 장이서는 날이었다.

그런데 갑자기 하늘에 수십대의 전투기가 나타났고 정체모를 전투기들은 마을에 폭탄을 퍼붓기 시작했는데!

순식간에 마을은 잿더미가 되었고 수천명의 사람들이 목숨을 잃어야만 했다.

 

 

폭격당한이날! 게르니카 시내에사는 주민들은 물론 외곽의 주민들까지 물건을 사고 팔기위해 마을광장으로 모여들었다.

광장은 사람들로 인산인해를 이뤘고활기가 넘쳤는데그러던 오후4시 정체불명의 전투기들이나타나 게르니카 상공을 낮게 비행하기 시작했다. 이전투기들은 모두 43대 였다.그런데 갑자기 전투기들이 마을에 융단폭격을 가하기 시작했다. 전투기가 투하한 폭탄은 엄청난 화력을 뿜어내며 마을을 초토화 시켰는데 마을은 사람들의 절규로 아비규환을 이루었고 1600명이 넘는 사람들이 목숨을 잃어야만 했다.전투기들은 2시간 30분동안 무려 32톤의 폭탄을 퍼부은뒤 유유히 사라졌다.평화로웠던 마을은 순식간에 지옥으로변했다이에 스페인 정부측은 누가 대체 어떤이유로 게르니카에 폭격을 가한것인지 조사에 착수 하였다. 하지만 전투기는 소속을 나타내는 그어떤 표시도 없었기에 정체를 밝혀낼수없었고

결국 그날의 비극은 역사속에 묻히게 된다. 

 

 

그러던 9년뒤인 1946년 1월 독일 뉘른베르크에서 열린 나치전범 재판에서 피고인 석에선 한남자 그는 나치 비밀경찰의 게슈타포의 창시자 독일공군의 총사령관인 헤르만 괴링 이었다.

 

 

그가 내뱉은 한마디에 전세계는 경악을 하게되는데 게르니카에 폭격을 가한것은 바로 히틀러 라는것이다.

게르니카 폭격은 한통의 전보로부터 시작되었다. 이전보는 스페인의 장군 프랑코가 히틀러에게 보낸것이었다. 그안에는 프랑코의 놀라운 제안이 담겨 있었는데 그것은 스페인의 영토인 게르니카를 공격해 달라는것 이었다.

 

 

그렇다면 대체왜 프랑코는 히틀러에게 자국의 영토인 게르니카를 공격해 달라고 했던것일까?

 

1년전인 1936년 스페인은 선거를통해 공산주의 정부가 정권을 잡게되는데 정부가 토지와 세금 개혁을 시도하자 프랑코는 이에반말하고 쿠테타를 일으켰다.이에 공산주의 정부군과 프랑코의 반군이 내전을 벌이고 있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양측의 전력은 우열을 가릴수 없을정도로 비슷했기때문에 그어느쪽도 승리를 장담할수 없었는데 이런상황속에서 프랑코의 가장큰 골칫거리는 바스크인들이었다.

 

당시 프랑코의 반군은 마드리드를 기점으로 스페인의 서쪽을 장악하고 있었고 정부군은 바르셀로나를 기점으로 스페인의 동쪽을 장악 하고 있었다.하지만 반군이 차치하고 있던 서쪽영토중 바스크 지방에 거부하던 바스크인들은 유일하게 정부군을 지지하며 이들을 물심양면으로 지원하고 있었다. 따라서 프랑코로서는 양쪽에 적이 포진한 상황으로 자칫하면 협공을 당할위험성이 있었고 이때문에 바스크인들은 프랑코에게 최고의 골칫거리였던것이다. 하지만 프랑코는 바스크인들을 직접공격할수 없었는데 민약 프랑코가 반군을 이끌고 이들을 공격한다면 전력이 분산되어 정부군에 패할수도 있는 상황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던어느날 프랑코는 부하로부터 히틀러가 신무기를 개발했으며 심상치 않은 움직임을 보인다는 보고를 받게 된다. 이때 프랑코는 한가지 묘안을 떠올리게 되는데 그것은 히틀러를 이용해 바스크인을 제거 하는 것이었다.

 

 

 

이에 프랑코는 히틀러에게 전보를 보내 바스크인들의 중심도시인 게르니카를 공격해 달라고 요청했고 히틀러는 괴링에게 게르니카를 공격하라는 명령을 내렸던것이다 히틀려의 명령을 받은 괴링은 최고의 전투조종사 60여명을 선발해 콘도르부대를 조직했고 부대는 독일공군의 신형전투기 하인켈 43대에 새로 개발한 소이탄과 폭탄을 실은뒤 스페인으로 향했다.

프랑코는 콘도르 부대가 게르니카 인근의 부르고스, 비토리아 비행장을 이용하게끔 도와주었고 콘도르 부대는 이곳에서 연료를 답재한 후 게르니카로 출격했는데 전투기안에는 무기가 가득실려 있었고 이무게 때문에 평소보다 활주거리를 2배이상 늘려 이륙했을 정도였다. 이후 콘도르 부대는 게르니카에 융단폭격을 가하면서 신무기의 성능은 물론 편대의 구성까지 실험하는 극악무도한 짓을 저질렀던것이다.

 

 

 

그렇다면왜? 히틀러는 프랑코의 요청을 수락했을까?

 

당시 히틀러는 제2차 세계대전을 준비하고 있었다. 이를위해 발틱해 연안에 페레문데 기지를 세운뒤! 한발에 2500제곱미터를 불태울수있는 소이탄과 고성능 폭탄등 각종 신무기를 개발하는 상황이었는데 하지만 이 신무기의 살상력은 이론에 불과할뿐 실제 파괴력은 증명되지 않았고 제2차 세계 대전을 일으키기에 앞서 성능을 실험해야 했다.

게르니카를 공격해 달라는 프랑코의 요청은 자국의 피해 없이 신무기를 실험할수있는 절호의 기회였던 것이다. 뿐만아니라 만약 프랑코가 내전에서 승리해 정권을 잡는다면 스페인은 독일의 우방국이 될것이기때문에 히틀러로서는 1석2조 였던것이다. 히틀러는 만약 자신이 게르니카를 폭격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 스페인에서 반독일 여론이 일것을 우려해 전투기에 독일임을 알수있는 모든 표시를 하지않았다. 히틀러를 이용해 자신의 정적인 바스크인들을 제거한 프랑코 그는 이를계기로 내전에서 승리를 하며 37년간 스페인의 독재자로 군림 할수 있었다.

 

그리고 2년뒤인 1939년 히틀러는 게르니카에서 행한 무기 성능 실험을 바탕으로 제2차 세계대전을 일으켰던것이다.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서 1600명이 넘는 시민들의 목숨을 앗아간 히틀러와 프랑코 하지만 두사람모두 그어떤 책임조차 지지 않았는데 게르니카 폭격은 스페인 역사상 최고의 비극중 하나로 기억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