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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프라이즈

히틀러에 유일하게 경례를 거부한 남자 <뉘른베르크법> [서프라이즈]

1936년 독일 함부르크 항구에서 찍힌 한장의 사진 해군 훈련함 진수식을 축하하며 모인 나치당

 

원들이 하나같이 상기된 표정으로 오른팔을들어 히틀러에게 경의를 표하는 모습이 찍혀있는데유독한남자만이 사람들사이에서 팔짱을 낀채 불만이 가득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1936년 독링함부르크 항구에서는해군 훈련함 진수식 행사가 한창이었다. 진수식에 참석한 나치 총통 히틀러의 축사가 끝나자 당원들이 일제히 경례를 했는데 그런데 유독 한남자만 팔짱을 낀채 경례를 하지 않고 있었다.

경례를 거부한 남자는 함부르크 조선소 직원이었던 아우구스트 란드멧서 그는 진수식 행사가 끝나자마자 현장에서 체포 되었다.

 

그런데 그의 죄목은 뜻밖에도 국가모독죄가 아닌 인종모독죄였다.

인종모독죄는 뉘른베르크법을 어겼을때 적용하는 죄목이다.

 

 

 

 

뉘른베르크법

 

1935년 히틀러에 의해 제정된 법으로 독일내 모든 유대인들에게 독일 시민권을 박탈하고 독일내에서 유대인의 활동을 엄격히 제한하는 반유대주의법 

 

 

그런데 나치의 당원이자 순수혈통의 독일인 아구스트가 인종모독죄로 체포되었던 것이다.

 

 

히틀러에게 경례를 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체포된 남자에게 어떻게 국가 모독죄가아닌

인종모독죄가 적용된것일까?

 

2년전인 1934년 독일 나치의 열혈당원 이었던 아우구스트와 친구들은 정당대회가 끝나고 술잔을 기울이고 있었다. 그때 술집으로 들어오던 한여자! 아구스트는 첫눈에 그녀에게 반하고 말았는데

 

 

 

진취적인 여성의 느낌을 풍기는 짧은 단발머리에 깊은눈매와 뚜렷한 이목구비를 가진 여자는 총명해 보이면서도 사랑스러웠는데 그녀의 이름은 일마 에클러였다. 두사람은 서로의 사랑을 확인하며 결혼을 하게 된다.

 

그리고 얼마후 아구스트와 일마는 혼인신고를 하기위해 시청을 찾았는데 일마가 유대인이기 때문에 두사람의 결혼은 허락할수없다는것이었는데 히틀러에의해 제정된 뉘른베르크법에는 독일인과 유대인의 결혼을 금지하는 내용이 포함되 있었던 것이다.

 

일마는 자신이 유대인이 아니라고 주장했다. 아리아인 아버지와 유대인 어머니사이에서 태어난 일마는 아버지가 아리안이기 때문에 자신도 아리아인이라고 생각 하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뉘른베르크법에 따르면 부모중 한명이라도 유대인이면 자식은 유대인으로 분류 되었고 심지어 조부모중 한명이라도 유대인이면 그손자 역시 유대인으로 분류되었다결국 두사람은 법적으로 부부가 되지 못했고 나치당원이었던 아구스트는 뉘른베르크법에 큰불만을 갖게 된다.

 

그러던중 두사람사이에서 사랑스러운딸 잉그리드가 태어났다. 법적으로 인정되지 않은 혼인이었기에 그녀의딸 인그리드는 세례를 받을수도 후견인을 둘수도 없었다. 더군다나 둘째 아이를 임신한 상태였던 일마는 자신이 유대인이기떄문에 남편과 자식에게도 피해가 가는것 같아 큰죄책감을 느꼈는데 뉘른베르크법으로 인해 두사람의 결혼생활은 시련의 연속이었다.  

 

그때 한통의 편지가 집으로 도착했다. 편지는 법정에서 온것이었는데 유대인인 일마와 아리안인인 아구스트가 결혼생활을 지속한다면 뉘른베르크법에따라 인종모독죄로 처벌 받을것이라는 내용이 담겨 있었던 것이다.

 

 

 

그길로 해군함대의 진수식이 열리고 있던 함부르크 항구로 향한 아우구스트 나치의 열혈 당원이었지만 뉘른베르크법에 대한 항의의 표시로 히틀러에게 경례하기를 거부 했던것이다. 결국 아구스트는 그자리에서 체포 되었고 유대인 여자와 결혼생활을 지속한다는 이유로 법정 2년형을 선고 받고 수감되었다.

 

 

2년뒤

 

 

뉘른베르크법에 환멸을 느낀 아우수스트는 출소 직후 독일을 떠나 덴마크로 이주할 계획을 세웠는데 1938년 10월 부터 뉘른베르크법이 강화되어 독일내 유대인들은 여권에 유대인을 상징하는 J모양의 붉은 도장이 찍혔고 

 

 

 

이여권을 소지한 유대인들은 독일 밖으로 나갈수 없었던 것이다. 독일내에서 아무것도 할수없었던 아우구스트 가족은 1939년 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자 뿔뿔이 흩어지고 말았다.

 

일마는 유대인 집단수용소에 수용된후 끝내 학살을 당했고  아우구스트는 일자리를 구한다며 떠난뒤로 의문의 실종을 당하게 된다. 그사이 두딸은 아우구스트의 할머니 손에 키워지다 각각 다른집으로 입양되고 말았다. 

 

거대한 권력앞에 저항하는 방법은 모두가 경례할때 경례하지 않는 것뿐이었던 아우구스트 그는 히틀러가 독일의 정권을 잡은 시기동안 유일하게 경례를 거부했던 한남자로 남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