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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프라이즈

[서프라이즈] 보티첼리의 비너스의 탄생의비화 [금지된 사랑]

1475년, 이탈리아 피렌체

 

혼신에 힘을다해 열정적으로 그림을 그리고 있는 한남자 그가 그리고 있는것은 한여인의 얼굴이었다.

 

 

 

집착에 가까운 열정으로 한여인의 얼굴을 그리고 있는 남자는 르네상스 시대를 대표하는 화가 산드로 보티첼리 였다. 그는 섬세한 선과 정교한 세부 묘사를 통해 인물을 명확하고 우아하게 그려내면서 선의대가라는 칭호를 얻고 있었다.

 

특히 꽃이 만발한 정원에서 신들이 봄을 즐기는 모습을 그린 <프리마베라>

인체의 아름다움을 극대화해 비너스 탄생 순간의 신비를 담아낸 <비너스의 탄생>

 

르네상스를 대표하는 명작으로 보티첼리는 당대 이탈리아를 대표하는 화가로 추앙받고 있었는데 

 

 

대체 보티첼리는 왜 한여인의 그림에 집착했던 것일까?

 

 

몇달전 보티첼리는 한여인을보고 첫눈에 반하게된다. 그녀의 이름은 시모네타 베스푸치였다. 시모네타는 갸날픈 몸에 피부는 눈처럼 희었고 사슴같은 커다란 눈망울을 가지고 있었다. 여기에 붉은빝이 살짝도는 금발과 곱슬머리가 신비감을 주었는데 그녀는 피렌체에서 최고로 손꼽히는 여인이었다.

 

시모네타를 본이후로 보티첼리의 머리속은 온통 그녀에 대한 생각으로 가득찼다. 하지만 시노네타에겐 약혼자 줄리아노가 있었는데 

 

줄리아노는 보티첼리의 후원자이자 당시 피렌체에서 최고의 부자였던 로렌조 데 메디치의 동생이었다. 만약 보티첼리가 시모네타에게 사랑을 고백한다면 그녀의 약혼자 줄리아노가 분노할것은 뻔한일이었다. 이는곧 메디치 가의 후원 중단과 동시에 화가로서의 보티첼리의 생명도 끝난다는것을 의미했는데 

 

왜냐하면 당시 그림물감으로 사용되던 안료가 굉장히 고가였기 때문에 화가들은 후원자에게 금전적인 도움을 받지 못한다면 더이상 그림을 그릴수 없었던 것이다. 

 

시모네타는 결코 보티첼리가 가질수 없는 여인 이었는데.이에 낙담한 보티첼리는 크게 좌절하게 된다. 시모네타에게 다가갈수 없는 자신의 처지에 괴로워 하던 보티첼리 그는 몇번이고 시모네타를 향한 마을을 접으려 했지만 그럴수록 그녀에 대한 사람은 더욱 커져만 갔다.

 

 

Venus and Mars <비너스와 마르스>

 

 

그러던 1476년 4월

 

 

보티첼리는 시모네타에게 사랑을 고백하기로 결심하는데 하지만 보티첼리는 그녀를 끝내 만날수 없었다.

 

시모네타가 폐결핵으로 갑자기 숨을 거두었기 때문이었다.

 

그녀의 죽음에 보티첼리는 절망했고 가슴이 찢어지는 슬픔에 하루하루를 고통스럽게 보내고 있었다. 시모네타를 향한 미련과 아쉬움으로 괴로원하던 보티첼리

 

그는 시모네타를 영원히 기억하기 위해 그녀를 화폭에 담기 시작하였다.

 

그결과 탄생한 작품이 <프리마베라> 였다.

 

La Primavera <프리마베라>

 

그리스의 신들이 봄을 만끽하는 모습을 그림 <프리마베라>에서 보티첼리는 시모네타를 아름다운 미의 여신 비너스로 표현해 화면 중앙에 그려 넣었는데 이상하게도 다른신들은 들떠 있는 표정인 반면 비너스는 무표정하면서 쓸쓸해 보이는 표정을 하고 있었다. 이는 봄인 4월 세상을 떠난 시모네타를 애도하기 위해서 였다.

 

이 외에도 보티첼리는 시모네타의 다양한 모습을 그렸는데 그녀의 아름다움은 <비너스와 마르스>에서 밤든 마르스를 애틋하게 바라보는 비너스로 따뜻하고 인자한 미소는 <석류를 든 성모>에서 성모마리아의 모습으로 화폭에 담았다.

 

The Birth of Venus <비너스의 탄생>

 

그중 그녀의 아름다움을 가장잘표현한 작품이 르네상스 시대에 최고의 걸작이라고 평받는 <비너스의 탄생>이었다. 이그림은 비너스가 태어난 순간의 신비로움을 그린작품으로 부드러운 곡선을 통해 인물들을 우아하고 기품있게 묘사한 작품인데 그림에서 시모네타는 완벽한 누드로 표현되고 있었다.

 

보티첼리는 꾸미지 않은 시모네타의 순수하고 아름다운 모습을 표현하고자 그녀를 누드로 그렸던 것이다. 

그리고 시모네타는 오른손을 윈쪽 가슴위에 얹고 있는 자세를 취하고 있는데 윈쪽 어깨는 오른쪽 어깨에 비해 힘없이 아래로 쳐져있다.또한 피부는 신비하리만큼 창백한 흰색을 띄고 있는데 이는 시모네타가 폐결핵을 앓던 당시의 고통을 표현하기 위해서였다. 

 

평생 결혼도 하지 않은채 시모네타를 그리며 그녀만을 그리워하던 보티첼리 그는 시모네타의 곁에 자신을 묻어달라는 유연을 남겼고 

 

1510년 보티첼리는 시모네타가 묻힌 오니산티 성당 공동묘지에서 잠들게 된다.

 

마음을 다해 사랑했던 여인 시모네타를 가질수 없었던 보티첼리 그는 결국 죽어서야 비로서 시모네타 곁에 묻힐수 있었다.  

 

 

 

 

진정한 사랑이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