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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프라이즈

질병을 이겨낸 예술가들 <서프라이즈>

사람의 눈과 귀와 마음을 움직이는 신비하고도 강력한 힘

 

우리는 그것을 세계적인명화 혹은 불후의 명곡이라 부른다. 하지만 이런 세계적인 예술품이 탄생하기 까지 예술가들에게는 숨겨진 고통이 있었다. 

 

 

Claude Monet 수련시리즈

 

수련시리즈로 유명한 프랑스의 화가 클로드 모네 그는 같은 풍경도 빛에 따라 다르게 보이는 순간의 인상을 화폭에 담아 빛의 화가로 불렸다. 모네는 주로 물체나 인물들을 흐릿하게 표현했으며 특히 노란색체를 주로 사용하는 자신의 독창적인 화풍으로 대표적인 인상파 화가로 손곱히고 있다. 

 

지난 2007년 미국 의학 잡지 <안과학 아카브>에 모네의 화풍이 질병과 연관되어 있다는 보고서가 발표 되었다. 미국 스탠퍼드 대학의 안과 전문의 마이클 마모 박사에 의하면 모네의 독창적인 화풍은 바로 백내장의 산물이라는 것이었다. 백내장 환자들의 경우 물체가 흐릿하게 보이고 노란색은 선명한 반면 파란색 계통은 잘보이지 않는다고 한다. 

 

모네또한 백내장에 걸리기 전에는 산뜻하고 밝은 꽃 풍경을 주로 그렸으나 시력이 점차악화 됨에 따라 그림이 흐릿해지고 무거운 갈색과 붉은색 그리고 노란색을 주로 사용해 그림을 그렸다고 한다. 마이클 마모박사는 모네의 그림을 정밀 분석해본결과 모네의 그림에서 색상과 디테일의 변화는 그의 시력변화와 일치해서 진행했다고 밝혀낼수 있었으며 백내장이 그의 화풍을 이끌었다고 주장을 하게 된것이었다. 실제로 기록에따르면 사망 3년전인 1923년 2회에 걸쳐 백내장 수술을 받은바 있다.

 

 

이렇듯 질병은 예술가들도 피해갈수도 없고 예기치 목한 질병은 예술가의 작품 스타일도 변화 시켰다.

 

인상주의 화가 르누아르도 그 질병의 고통을 피해갈수 없었다. 르누아르가 1884년에 그린 <목욕하는 여인들>은

배후의 정경과 윤곽선이 뚜렸하게 구분되고 있다. 하지만 그가 말년에 다시그린 1919 <목욕하는 여인들은>은 제목은 같지만 그림의 분위기가 전혀 달랐다.

 

Auguste Renoir 목욕하는 여인 왼쪽 1884년 오른쪽 1919년

 

뚱뚱한 체형으로 변해있는 여인들 그리고 전체적인 빛깔도 붉은색이강해 마치 황혼의 노을빛을 받고있는듯 보인다. 이렇게 르누아르의 화풍이 변하게된 이유는 바로 유머티즘성 관절염 때문이었다. 손가락 마디마디가 굵어지고 손가락이 휘어져 붓을 쥐고있는것 조차 힘들었다고 한다.

 

하지만 르누아르는 굳어진 손가락 사이에 붓을끼워 놓고 끈으로 고정시킨후 그림을 그렸다. 관절염으로 인한 손의 고통은 전처럼 날렵하고 부드러운 붓터치를 힘들게 만들었고 결국 르누아르의 그림속 여인은 점점더 뚱뚱해 졌으며 붓의 터치는 점점더 거칠어 졌다.

 

 

 

 

깨끗하고 깔끔하게 정돈된 작업실 마치 성직자처럼 보이는 이남자에게도 역시 질병은 창작에 가장큰 에너지원이었다. 꼼꼼하고 세심한 성격의 완벽주의자였던 그는 추상화가이자 신조형주의의 창시자이며 현대회화에서 빼놓을수 없는 인물 몬드리안이다.

 

 

Piet Mondrian

 

그는 심한 강박증과 결벽증에 시달리고 있었는데 특히 무엇이든 반듯하게 정리해야 직성이 풀렸던 그의 성격은 작품에도 고스란히 드러나있다. 그는 오직 수직선과 수편선으로만 그림을 그렸고 아무의도 없이 선을 그리는것 같지만 한치의 오차없이 고도로 계산된 황금 비율에 의해 선과선을 그어 나갔다. 채색도 역시 순수한 색에 대한 집착증세로 인해 색을 배합하지 않았고 오르지 빨강, 파랑,노랑 삼원색을 사용했는데 그의 독특한 화풍은 집착과 강박이 낳은 질병의 결과물이었지만 몬드리안의 기하학적이며 차가운추상은 이후 회화를 넘어 건축과 디자인에까지 큰 영향을 미쳤다고 한다.

 

 

예술가들에게 있어 질병은 인생의 전환점이 되기도 했다.

 

 

법률사무소에서 서기로 일하던 한청년은 어느날 배에 심한 통증을 느꼈고 얼마후 일을 그만두게 된다. 병명은 단순한 충수염이 었지만 합병증을 일으켜 더이상 일을할수 없게 된것이었다. 요양원에 머물던중 그는 기분전환을 위해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는데 마치 무엇인가에 홀린듯 그림에 빠져 들었다고 한다. 그림속에서 희열을 맛본남자는 이후 화가의 길로 들어섰고 그가 바로 야수파의 대표주자 앙리 마티스였다.

 

이후 화가로 변신한 마티스는 자신만의 강렬한 색채 감각을 구사하며 왕성한 작품활동을 해나가고 있었다. 그런데 그의 작품 활동에 발목을 잡은것이 있었다. 그것또한 다른 질병이었다. 기관지염에 결장암 수술까지 받게된 그는 수술 후유증으로 탈장 증세를 얻게 되었고 이후 손떨림이 심해 더이상 작품 활동을 할수 없게 되었다.

 

하지만 창작의 열망을 포기할수 없었던 마티스가 붓대신 선택한것은 종이를 오려붙여 만드는 콜라주였던 것이었다. 자신의 예술가 인생을 표현한 <재즈>라는 작품은 그가 육체적고통을 이겨낸 첫작품이었다.

 

사람들은 마티스의 이런기법을 가위로 그림 소묘라고 극찬을 받았는데 붓이아닌 그의 손맛을 그대로 느낄수있는 새로운 기법을 통해 제2의 예술 인생을 맞이하게 된다.

 

 

 

질병으로 인해 새로운 인생을 맞은 음악가도 있었다.

 

 

그가바로 바이올니스트 파가니니였다. 다른연주가들은 흉내조차 낼수없는 연주 실력으로 악마의 바이올린이라고 불렸던 그는 사실 선청성 장애인 엘러스-단로스 증후군이라는 희귀병에 시달리고 있었다.

 

엘러스 - 단로스 증후군

피부가 늘어지고 관절이 심하게 휘는 선천성 희귀 질병

 

엘러스 - 단로스 증후군에 걸린 파가니니는 관절을 기형적으로 유연하게 움직일수 있어 다양한 음역들을 넘나드는 놀라운 연주기법을 선보였다고 한다.

 

 

질병으로 인해 직업이 바뀌면서 새로운 인생을 산 음악가도 있었는데

 

 

그가바로 안토니오 비발디였다. 1703년 신부가 되었지만 천식으로 인한 심한 기침때문에 미사를 주관할수 없게 되었고 그대신 성가대를 지휘하면서 음악에 눈뜨게 된다. 이후 비발디는 교회 음악을 작곡하기 시작하였고

<비발디의 사계>를 포함해 400여 곡의 협주곡을 작곡하게 되었다. 천식이 아니었다면 우리는 이 위대한 음악가를 만날수 있었을까?

 

 

 

질병의 고통마저 예술혼으로 승화시켰던 주인공들 질병은 육체를 무력하게 만들수 있었지만 그들의 창작에 대한 열정만은 꺽을수 없었다. 그리고 그속에서 탄생한 작품들은 아이러니 하게도 시대를 풍미하는 세기의 작품으로 남아 회자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