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서프라이즈

죽음의 천사 요제프 멩겔레 <서프라이즈>

1930년 독일

 

히포크라스 선서를 한 이는 요제프 멩겔레라는 약학과 의학을 공부하는 뭔헨대학의 의학과였다. 하지만 사람들은 언제가 부터 그를 죽음의 천사라고 부르게 되었다.

 

히포크라스 선서

의학의 아버지로 불리는 히포크라테스가 말한 의료의 윤리적 지침

 

 

Josef mengele 요세프 멩겔레

 

대학의 우수한 학생으로 주목받던 멩겔레 그는 점차 나치의 국가주의 이념에 심취해 갔다. 그러던중 출세를 위한 명예욕에 불타 성공을 위해 나치의 추종자가 되었고 결국엔 나치 친위대에 합류 하기 이른다. 심지어 1934년에는 쉽고 빠르게 교수가 되고자 학과교수 오트마 폰 페르슈어 교수의 딸과 결혼까지 하는데

 

몇년후 폴란드 아우슈비치 지역의 기차역에서 멩겔레는 의사가운이 아닌 친위대 복장으로 모습을 드러냈다. 폴란드 남부에 위치한 아우슈비츠 지역은 인류가 행한 가장 잔혹한 행위의 흔적 이른바 유태인 학살에 상징으로 남을 만큼 혼돈의 시대를 거친곳이다. 그런데 그때 멩겔레가 나타났고 그는곳 자신의 임무를 수행하기 시작했다.

 

 

아우슈비츠 수용소

제2차 세계대전 중 폴란드 남부에 잇던 독일의 강제 수용소이자 집단학살수용소

 

 

포로들을 태운 기차가 도착하자 멩겔레는 수신호를 취했는데 당시 멩겔레의 수신호는 윈쪽방향과 오른쪽 방향을 표기 하고 포로의 손등을 툭툭 치는 행위로 구분되어 있었다. 멩겔레의 수신호에 따라 포로들은 그의 손이 윈쪽으로 기울면 독가스실로 오른쪽으로 기울면 강제노동소로 가야했고 손등을 치면 별도로 감금되 인체실험을 당해야 했다.

 

그야말로 멩겔레는 나치스의 가장 악랄함을 선보이며 히포크라스 선서를 했던손으로 인간의 생과 사를 지휘하고 있었던것이다. 당시 아우슈비츠 희상자들은 자신이 기차역에 발을 내딛는순간 각각의 지옥을 선별해 놓고 실험결과를 따라 목숨을 좌지우지 했던그를 죽음의 천사라 불렀다. 죽음의 천사 그것은 백의의 천사가 되어야할 의사 멩겔레의 타락을 역설적으로 표현한 포로들의 울부짖음 이었다.

 

 

 

아우슈비츠에서 멩겔레가 저지른 막행은 무엇일까?

 

 

 

당시 아우슈비츠에서 멩겔레는 세가지 제복으로 상징화된 인물이었다. 생존자들은 그가 하얀가운을 입고 있으면 아주 친절하였고 파란 수술복을 입고 나타나면 가죽 끈에 묶여 수술대로 갈것을 알았고 회색제복을 입고 오면 피를뽑힌뒤 갖가지 실험끝에 죽어야 실험실을 나갈수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고 한다.

 

그뿐만이 아니라 멩겔레는 희생자들의 머리카락을 따로모아 카페트와 의복을 짜도록했고 피부로 전등의 갓을 만드는가 하면 유태인으로 비누를 만들었다. 이것을 증명하듯 아직도 아비슈비츠의 수용소에는 학학자들을 태웠던 소각로 당시 희생자들의 머리카락 고문실들이 남아있어 당시의 상황을 짐작할수 있게 했다.

 

 

 

이토록 잔혹한 임무를 수행한 멩겔레는 당시 히틀러의 의사라고 불리며 악행을 그치지 않았다.

 

하지만 이런 멩겔레가 이해할수 없을만큼의 친절과 인관적인 면모를 보여주는대상이 따로 있었다. 그 주인공은 바로 쌍둥이 멩겔레는 경비병들에게 쌍둥이를 혹사하지 말라는 특별명령을 내릴만큼 쌍둥이에게는 더많은 식사 좋은 생활 환경을 누리게 했는데 그런이유로 쌍둥이들은 멩겔레의 아이들로 불리며 부러움의 대상이 라고 한다.

 

 

 

하지만 멩겔레의 이러한 행동은 사상 최악의 악행을 예고한 것이었다.

 

 

 

어느날 장인인 페르슈어 교수가 쌍둥이 연구를 한다는 사실을 알게된 멩겔레는 장인의 눈에 들어 신분 상승할 계획하에 쌍둥이에 대한 잔혹한 실험을 계획하게 된다.

 

혈액형이 다른 쌍둥이중 한쪽의 피를 뽑아서 다른쪽에 수혈

 

성별이 다른 이란성 쌍둥이의 생식기를 교체하는 수술

 

쌍둥이의 몸을 한몸으로 만드는 '인공 샴쌍둥이 수술'

 

등 극악무도한 짓을 저질렀다. 쌍둥이의 형질연구를 한다고 주장했던 그의이같은 실험은 쌍둥이에대한 광적인 집착에 바뀌어 가고 멩겔레의 음모를 알수 없었던 쌍둥이들은 처음으로 자신에게 친절했던 행동때문에 심장의 약품 주사를 맞고 죽기전 까지도 멩겔레를 전적으로 신뢰하였다. 하지만 쌍둥이들은 그의 가장 주된 실험 대상이되어 고통스럽게 죽어 갔던 것이었다. 당시 아우슈비츠에서 수용되었던 실제 쌍중이 베라크리겔은 '말로 형연할수 없는 고통이었다' 라고 회고 하였다.

 

  

그러나 그토록 잔인했던 맹겔레의 만행은 수십년동안 세상에 알려지지 않고 있었다. 그이유는?

 

 

그것은 바로 악행을 저지른 멩겔레의 행방때문이었다.

 

 

연합군의 승리로 그는 미군의 포로가 되었다. 그러나 혼란을 틈타 신원을 속여 무사히 석방 되었고 고향에 숨어 평온한 5년을 보냈다고 한다. 그러던 1946년 10월 미국이 23명 친위대소속 의사를 재판에 회부하자<뉘른베르크 재판> 이것을 안 맹겔레는 피난민으로 가장 하여 아르헨티나로 도주하게 된다.

 

뉘른베르크 재판

1946년 독일 뉘른베르크에서 열린 나치 독일의 전범들과 유태인 학살 관여자에 대한 열린 연합국 측의

 '국제 군사 재판'

 

이후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산부인과 의사로 위장했던 그는 1959년 7월 서독정부에서 영장을 발부하자 아르헨티나에서 파라과이로 파라과이에서 브라질로 도피를 했다. 

 

그런데 1985년 브라질에서 시신 한구가 발견되었다.

브라질에서 발견된 남자의 시신은 죽음의 천사 멩겔레였다. 34년동안이나 추적자를 따돌리며 살았던 멩겔레는 1979년 브라질에서 바다수영을 즐기던중 뇌졸증 발작으로 익사한것으로 발혀졌다. 그렇게 멩겔레의 죽음을 세상에 알리고 난뒤 1992년 미국, 독일, 남미정부가 사체 DNA를 공동 확인했고 이로서 그에대한 모든내용이 마무리 되었다.

 

사상최악의 홀로코스트 요세프 멩겔레 그는 결국 죽어서야 잡혔다. 끝까지 은폐하려했던 그의 소름끼치는 진실 숨통을 조이던 참혹한 아우슈비츠의 비극은 뒤늦게 밝혀져 세상에 고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