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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프라이즈

미녀와 야수 "오르시니 후작" Bosco dei Mostri 괴물의숲 <서프라이즈>

1550년 이탈리아

 

로마근교 오르시니 후작의 저택은 베일에 가려진 공포의 대상이었다. 때문에 저택에 대해 알고 싶어하는 사람들중 어떤이는 호기심을 견디다 못해 담을 넘어 숨어들기도 했는데 어느날 저택안으로 들어 갔던 한남자는 무엇인가를 목격한뒤 넋이 나갔고 이 일이 있은뒤 오르시니저택은 더더욱 두려움의 대상이 되었다.

 

저택의 비밀은 주인인 오르시니 후작에 있었다. 집안 하인들조차 얼굴을 볼수 없었던 그는 태어나 수년이 넘도록 어느 누구와도 가까이 하지 않았던 인물이었다. 그런데 그런 그에게도 사랑이 찾아 왔다. 평생 단한번 느껴본 사랑이란 감정 떄문에 그는 더이상 자신을 감추고 살수 없다고 결심하는데..얼마후 하인을 시켜 미리 점찍어둔 여인에게 청혼을 한 후작은 오래지나지 않아 결혼 승락을 받게 되었다.

 

그런데 청혼을 승락했다는 소식에 후작은 하인들에게 결혼식 당일까지 모두 집밖으로 나가라는 경고의 메세지를 전했다. 그러던 내내 정원에서만 시간을 보내던 후작은 신부를 밤늦게 맞이 하겠다는것을 밝혔다. 그리고 결혼식 날밤 몽골계 신부 율리아 파르네즈가 저택에 들어서고 있었다. 그런데 그날따라 신부가 들어선 정원은 평소와 다르게 음산한 분위기가 가득했고 신부를 놀라게 하는 알수없는 정체가 따로 있었다. 그것은 바로 기괴한 형상의 석상들 도처에 널린석상은 신부를 놀라게 했고 더이상 집안에 들어서지 못하게할 정도 였다. 그런데 바로 신부앞에 오르시니 후작이 모습을 드러 냈다. 신부가 처음보게된 오르시니 후작은 흉직한 얼굴의 소유자였다. 그의 얼굴 그것이바로 후작이 사람들눈을피해 숨어 살게한 비밀이였던 것이다.

 

 

 

Bosco dei Mostri

 

 

정원에 석상이 있었던 이유는?

 

 

 

자신의 얼굴을보고 신부가 놀랄것을 걱정한 후작이 자기보다 더 기괴한 조각상을 만들어 정원 곧곧에 세워둠으로서 흉직한 그의 모습을 보게된 신부가 놀라지 않기를 바랄뿐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결혼후 혹여 자신의 아내를 다른사람에게 빼앗기게 될까봐 조바심이난 후작은 점점 아내를 감시하고 의심하면서 더욱 무서운 조각상들을 세워두게 되었고 이로서 아무도 집에 들어오지 못하게 하였다. 하지만 문제는 그의 비뚤어진 애정때문에 아내가 심각하게 지쳐가고 있었다는 사실이었다. 날이 갈수록 더욱 심해지는 후작의 행동은 끔찍한 충격에서 빠져 나올수 없게 했고 결국 오래지나지 않아 그녀를 죽음 까지 내몰고 말았던 것이다.

 

아내가 죽은뒤 오르시니후작은 정원에서 꼼짝도 안하고 있었다. 뒤늦게 아내의 심정을 알게된 후작은 사죄하는 마음으로 아내를 위해 새로운 석상들을 만들기 시작했다. 그결과 돌베개를 머리에 베고있는 여인과 그곁을 지켜주는 작은 형상물은 애초로운 자신의 모습으로 형상했다. 그리고 특이 하게도 몽골인이였던 아내를 기리는 후작의 마음은 석상을 동양적인 느낌으로 완성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얼마뒤 아내를 잃은 슬픔과 자책감에 살던 후작도 죽음을 맞이 하게 되었다. 이후 만인에게 공개된 오르시니 정원 그것은 라틴어로 보여준다는 뜻의 몬스터 즉 아내에게 보여주기 위한 작은숲 몬스터즈의 작은 숲으로 불렸고 정원가득 후작이 남긴 600여개의 형상은 사람들의 발길을 잡기 시작했다. [Bosco dei Mostri(괴물의 숲) Bosco Sacro(신성한 숲)]

 

 

Bosco dei Mostri 의 돌베게 여인

 

특히 1786년부터 2년동안 이탈리아 전역을 두루 여행하면서 틈틈히 일기와 편지를 썼던괴테가 이탈리아 기행이란 책에

 

괴테 - 이탈리아 기행中 -

정원에 발을 내딛는 순간부터 모골이 송연해지고 섬뜻한 기운을 어쩔수 없었다. 누구든 정원에서 길이라도 잃는다면 심장이 멈추고 말것이다.

 

이렇게 표현 하면서 오르시니정원은 유럽전역에 널리 알려지는 계기를 맞았다. 또한 스페인에 초현실주의 미술가 살바도르 달리가 자신의 작품중 일부는 괴물정원에서 석상이주는 기괴하고 환상적인 이미지가 모티브가 되었다고 발표 했다. 그렇게 괴물정원에 숨겨진 처절한 후작의 심정은 아이러니 하게도 초현실주의 작가들에게 모티브로 제공되었던 것이다.

 

그러던중 고민에 빠져있던 프랑스의 한 영화감독이 중요한 대역에 캐릭터를 물색 하던중 우연히 책에실린 이탈리아 기행에쓴 괴물정원이 눈에 들어왔다. 그리고 얼마후 오르시니 후작의 얼굴은 영화 미녀와 야수[1946]에서 주인공 야수의 얼굴과 캐릭터로 탄생되었다. 그렇게 흉직한 모습을 평생 숨긴채 살고자 했던 후작의 잃어버린 얼굴은 결국 자신이 만든 괴물조각으로 인해 전세계에 널리 알려져 지금까지도 유명세를 치르게된셈이었다.  하지만 세월이 흘러 제 2차 세계대전의 발발로 정원은 많은 부분이 훼손되고 말았다. 그러나 이때 후작의 안타까운 사연을 알고 있던 사람들이 뜻을모아 정원을 다시 복구했고 그결과 지금까지도 성벽과 탑으로 둘러쌓인 예전의 정원 그모습 그대로를 볼수 있게 되었다. 이후 놀랍게도 정원 석상은 영화 캐릭터로 되었다. 아내를 상징하는 동베게를 벤여인은 "인어공주"로 보초를 서고있는 크고작은 병사들은 각각의 영화속 병사로 되살아 난것이다. 마치 한편의 풍경화처럼 인간 심리의 위태로움을 역설적으로 표현한 오르시니 정원 이곳은 더 이상 살기 위한 집이 아닌 일종의 작품으로 사람들에게 인식되고 있다. 집안에서 밖을 내다보면 괴물이 날뛰고 있는 광경을 바라보는것 같은 저택 그곳엔 흉칙한 외모 때문에 폐쇄적인 삶을 살다간 한남자의 비극적인 사랑 이 있었다. 

 

그렇다면 혹시 수많은 사람들이 발길이 오가는 정원 한켠에서 두사람이 다시만나 못다이룬 사랑을 피어가고 있는것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