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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프라이즈

우주 개 라이카 Laika의 아름다운 여행 [서프라이즈]

1957년 10월 러시아 모스크바

 

 

시내를 떠돌며 쓰레기통을 뒤지며 살아가는 주인없는 개 한마리 어느날 햇빛이 따뜻하게 내리는 곳에서 먹을것을 찾고 있던 녀석은 하얀옷을 입은 남자들에 의해 잡히고 말았다. 그리고 어디론가 끌려갔는데 누가 왜 자신을 데려가는지 대체 이곳이 어떤곳인지 알수 없었지만 녀석은 다른 개들을 만나면서 안심할수 있었다. 그들은 깨끗하게 목욕도 시켜주고 주사도 맞히고 맛있는 음식도 많이 주었다. 갖혀있긴했지만 잠자리도 편하고 따뜻했다. 그들이 왜 녀석에게 친절하게 대하는 것인지 녀석은 알수가 없었다. 

 

 

 

 

하지만 녀석에게 라이카 [Laika]라 이름이 붙여진후 녀석의 생활이 조금씩 달라지기 시작했다. 좁은 상자속에서 가만히 있기 훈련이 매일 반복되었던것 이 훈련을 왜 하는것인지 영문을 몰랐던 라이카는 이훈련으로 인해 반세기 후에도 자신의 이름이 사람들에게 기억될것이라는 사실도 전혀 알지 못했다. 

 

몇일째 좁은 상자속에서 가만이 있는 훈련을 받았던 라이카는 금세 훈련에 적응하고 종종 칭찬을 받기 시작했다. 날이갈수록 훈련의 강도는 점점 강화되었다. 몇일동안 계속 묶여있다가 풀리기도 했다. 그리고 좁은 곳에서 먹이를 먹는 것과 용변을 보는 훈련도 받았다.

 

 

 

 

함께 훈련을 받았던 다른개들이 하나둘 안보이기 시작하고 라이카 혼자서만 훈련을 받게 되었다. 라이카가 이곳에 온지 20여일후 1957년 11월 3일 라이카는 다른날과 마찬가지로 좁은 상자에 들어갔다. 다른것이라곤 많은 사람들이 좁은상자에서 훈련받는 자신의 모습을 지켜보고 사진을 찍는 다는것 뿐이었다. 그리고 사람들이 숨죽여 조용해지자 엄청난 굉음이 들리기 시작하더니 순식간에 라이카가 있는 상자가 붕떠오르기 시작했다. 그렇다.

 

라이카가 오랜시간 늘참기 훈련을 햇고 지금 함께 하늘을 나는 좁은상자는 바로 우주선이었던 것이었다. 이는 우주공간 여행에 있어서 동물이 안전하면 인간도 안전하게 우주로 갈수있다는 가능성을 확인할수 있다는 전제하에 이루어진 인공위성 발사 실험이었다.

 

 

 

 

1957년 10월 4일 최초 인공위성 발사 성공에 세계적인 주목을 받고 자신감을 얻은 러시아가 그들의 가장큰 기념일인 11월7일 볼셰비키 40주년 혁명일에 맞춰 제2호 인공위성 발사 계획을 했던 것이었다. 당시 러시아 총리 였던 흐루시초프의 명령으로 이루어진 실험 책임자인 코룔로프는 한단계 진보된 생명체를 태운 인공위성을 준비하게 되었던 것이었다. 그러나 우주선을 제작할 시간도 촉박하였던 터라 인공위성을 탈 생명체를 훈련하는 시간은 더욱 촉박했다. 결국 인간을 대신할 생명체로 '개'가 선정된것이고 떠돌이 개들을 찾아 오래참기 훈련을 시작해 이를 통과 한게 라이카가 세계최초 우주여행을 하는 개가되는 영애를 받은것이었다. 

 

그렇게 우주로 날려보낸 라이카는 몸이 묶인채 훈련했던 대로 좁은 우주선에서 물을 마시고 먹이도 먹으며 지구를 돌며 우주공간을 떠돌았다. 그리고 라이카는 우주 비행을 하는 내내 신체변화 데이터를 지상으로 전송해 우주에서도 동물생명체가 얼마든지 살수 있다는것을 확인시켜준 계기를 만들어 주었다. 발사후 7일째 러시아 정부는 라이카 실험에 대해 공식 발표를 했다.  

 

 

그런데

 

 

라이카가 발사 일주일 만에 사망했다는 소식이었다. 과연 어떻게 된것일까? 사실 라이카의 죽음은 예견된 것이었다. 당시로서는 날려보낸 우주선을 다시 지구로 되돌릴 기술이 없었던것 그렇기때문에 발사이전부터 라이카의 신체변화 실험이 끝나는 10일후 자동적으로 먹이를 통해 독극물을 투입시키고 안락사 시킬 계획이었던 것이었다. 정부의 발표후에 사람들은 우주에서 죽음을 맞이한 라이카에게 애도를 표하고 세계 곳곳에서 추모곡이 만들어 지기도 하였고 라이카가 우주개발에 기여한 것을 영원이 잊지못할것이라고 말했다.

 

그와 더불어 라이카의 실험으로 무중력상태에서도 온도와 습기만 조절되면 인간 역시도 우주에서 생존할수 있다는 사실이 입증되었다며 앞으로 유인 우주비행 시대가 열릴것이라며 자축하고 나섰다. 그리고 스푸티니크 2호가 지구를 2,571번째 돌고있는 1958년 4월4일 라이카의 시체가 있는 우주선을 대기권에서 폭발시켜 우주속으로 사라지게 함으로써 성공적인 지구생명체 우주여행 실험을 마쳤다고 러시아 정부는 최종 발표 했다. 이는 4년뒤인 1961년 4월 러시아가 인류최초의 우주비행사 유리 가가린의 탄생을 성공시키는 밑거름이되는 실로 엄청난 성과였다.

 

 

 

그러나 2002년 라이카 실험에대해 러시아 정부를 믿지못했던 미국과 스푸트니크 2호 미션에 참여했던 익명의 러시아 과학자로 부터 충격적인 사실이 폭로 되었다.

 

최초의 우주비행견 라이카는 알려진바와 같이 1,600km 상공에서 일주일동안 우주비행을 마친후 독극물이 들어있는 식사를 하고 편안하게 죽음을 맞이 한것이 아니라 발사 당시 스푸티니크 2호의 엔진 굉음과 진동에 겁을 먹은 라이카는 위성발사 시점에 심장 박동이 3배가 빨라졌으며 발사중 단열재가 떨어져 나가 위성내 온도가 섭씨41도 까지 올라갔다는 것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라이카는 훈련을 받은대로 음식을 먹는등 생존 신호를 보내 왔다고 했다. 하지만 스트레스를 받아 7시간이 지난후에는 더이상 생명신호를 보내지 않았다고 전했다. 외롭고 무서웠을 라이카의 우주여행은 그렇게 종지부를 찍었던 것이었다. 실험에 실패 했음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러시아의 거짓성공 발표는 당시 미국과 러시아의 양극 체제 속에서 미국을 의식한 러시아가 자존심을 지키기위한 결과라고 해석되고 있다. 

 

그렇게 최초로 우주여행을 했던 지구 생명체인 라이카의 최후에 대한 진실이 50여년만에 세상에 들어난 것이었다. 전세계 사람들은 라이카의 안타까운 죽음에 애도를 표했다. 러시아 정부는 최초 우주동물실험과 희생을 기념하기위해 모스크바에 라이카동상을 건립하였다. 하지만 라이카의 실험을 시발점으로 수많은 동물들이 우주실험에 희생되고 있다.

 

오늘날 우리가 우주공간을 여행할수 있는것은 인간의 노력 못지않은 수많은 동물들의 희생이 있기 떄문이었던것은 아니었을까?  

 

 

 

sana - space dog 라이카 추모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