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서프라이즈

마녀사냥의 진실 [세일럼[Salem]의 시련][서프라이즈]

17세기 뉴잉글랜드의 작은 항구도시 세일럼

 

 

바다와 햇살이 어울어진 이도시의 명칭 세일럼[Salem]은 히브리어로 평화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1692년 어느날밤 세일럼 지역의 정신적 지주였던 새뮤얼 패리스 목사집에서 목사의딸인 9살의 베티와 목사의 조카 11살 에비게일이 갑자기 괴성을지르며 발작을 일으키기 시작했다. 이것을본 목사는 어떻게든 두소녀를 진정시키려 했지만 오히려 아이들은 귀를막고 어떤말도 들으려 하지 않았고 누군가 바늘로 찌르고 칼로베는 것처럼 아프다며 몸을 비틀고 소리를 지르는등에 고통을 호소 했다. 뒤늦게 증상을 보게된 의사는결국 아이들을 강제로 묶고 진찰을 하게 되었는데 잠시후 마귀에씌였다는 의사의 말 이것은 세일럼에 저주와 시련의 시작이었다. 

 

그날밤 야심한 시각이었지만 마을사람들은 쉬쉬하며 목사의 집으로 몰려들었고 마귀를 쫓는 예배를 들이기 시작하였다. 17세기 청교도 혁명 전야의 시대 당시에는 누구든 마귀로 몰리면 처형 당하던 시대였다. 때문에 이러한

분위기에 마을사람들은 패리슨 목사의 딸이 마귀에 씌였다는 사실이 세어나가지 않도록 각별히 조심하고 있었는데

 

 

 

 

다음날 마을에 갑자기 마녀 재판이 열렸고 목사의 딸과 조카가 심판대에 올라있었다. 판사는 재판 내내 소녀들에게 마귀를 씌운 마녀가 누구인지 집요하게 파고 들었다. 그리고 겁에 질린 베티와 애비게일이 판사의 추긍끝에 각각의 마녀를 지목했는데 베티가 지목한 사람은 다른 아닌 티투바 그녀는 목사의 집에서 일하며 베티를 돌봐주었던 인디언 하녀 였고 에비게일이 지목한 사람은 마을을 떠돌던 비렁뱅이 여인 로라였다. 일순간 마녀로 몰린 티투바와 로라는 자신은 절대 마녀가 아니라고 결백을 주장했지만 소녀들의 지목을 단죄의 증거로 삼아 판사는 악마와 사악한 계약을 맺었다고 두여인을 몰아세우며 화형에 처했다. 이로서 세일럼은 마녀 색출로 잠잠해지는듯했는데

 

 

 

하지만 예상과 달리 그후로도 마을 곳곳에서 아이들이 발작을 일으켰고 그때마다 판사는 재판을열고 마녀를색출 처형하는 과정을 반복해왔다. 그렇게 주민서로가 서로를 마녀를 지목하면서 1년이 넘는 시간동안 주민들은 집단 세일럼 마녀 재판에 시달려야 했고 피비린내 나는 재판이 계속되는동안 세일럼의 감옥은 마녀 혐의자들로 넘쳐났다. 그결과 200여명이 감옥에 갇혀 이중 21명이 마녀로 색출되어 처형 당하였으며 마녀 혐의자로 갇혔던 사람들이 옥중에 돌연 사망하는등 사태는 심각하고도 참옥했다. 그렇게 걷잡을수 없는 마녀의 공포속에서 1년이나 지속되었던 세일럼의 시련은 오랜세월이 흘러서야 서서히 지는듯했다. 그리고

 

 

300여년이 지난 어느날

 

 

당시 세일럼 지역의 발작증세를 연구했던 의학자들이 새롭고도 놀라운 사실을 밝혀 냈다. 마녀 색출의 원인이 되었던 발작증세는 세일럼 주민의 식생활에서 문제가 있던것이라고 주장했는데 당시 사람들이 주식으로 삼았던 호밀빵 바로이 호밀빵의 핀 곰팡이 균이 문제가 되었다고 발표한 것이다. 당시 마귀에 쓰였다고 판명되었던 사람들은 대부분이 면역력이 없는 아이들이 었다. 이것은 아이들의 몸에 호밀빵의 곰팡이균이 축척되어 방치되면서 곰팡이 균이 뇌속으로 까지 침입했던 것이다. 결국 아이들의 발작은 마귀에 쓰인게 아닌 뇌염발작증세로 밝혀지게 되었는데 뒤늦게 안 이 어처구니 없는 사건의 진실

 

 

그렇다면 왜 당시에는 의사가 있음에도 발작증세를 병으로 보지 않고 무조건 마귀에 쓰였다고 치부한 것일까?  

 

 

 

 

1500년부터 1660년까지 종교개혁으로 야기된 종파적갈등이 심했던 당시 세일럼정부는 종교적으로 반대되는 세력을 마녀 재판에 회부하여 처형할수있는 권한이 있었고 바로 이점을 악용했던 것인데 그때당시 세이럼에서는 청교도 가부장제도에서 벗어났다고 생각하는 여성들을 제거하려는 음모를 세우고 있었던 때였다. 하지만 명분없이 임의로 여성들을 처단할수 없었던 정부는 마녀 재판이라는 방법으로 행실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거나 또다른 이유를들어 고의로 임의의 여성들을 마녀로 몰아 넣었고 결국 그렇게 수많은 여성을 희생양으로 삼았던 것이었다. 

 

 

 

 

뒤늦게 밝혀진 이러한 세일럼 마녀사냥의 참상은 이후 미국문학을 세계문학으로 올려놓은 작가 호손 [Nathaniel hawthorne] 자신의 문학작품<주홍글자>에 기술하면서 사람들에게 알려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작품속에서 박해받았던 약자의 삶은 이후 영화로 까지 제작되었는데 그작품이 바로 우리가 알고 있는 주홍글씨다. 극작가 아사밀러[Arthur Miller]는 시련이라는 희곡이 세일러 마녀재판이 낳은 기막힌 비극을 생생하게 표현했고 이것을 기점으로 세일럼의 참상은 세계각지로 알려지게 되었다. 

 

상황이 이러하자 세이럼에서는 마녀 재판의 강풍이 몰아치던 300년이 되던해에 1992년 시민들이 뜻을모아 당시 희생되었던 사람들을 기리며 역사를 봉인하려는듯 그들을 추모비를 세우기도 했다.

 

 

 

 

 하지만 아이러니 하게도 마녀사냥으로 수많은 희생을 낳은곳 세일럼은 현재 마녀 박물관과 마녀상점이 넘쳐나는 관광도시로 바뀌어 사람들의 발길을 잡고 있다. 과거 피를 뿌렸던 마녀사냥 공포에 떨어야했던 시련의 도시 세일럼 지금 마녀상점이 들어선 바로 그자리가 지난날 마녀로몰려 억울하고 참혹한 죽음을 맞았던 바로 그자리라는 불편한진실이 이로써 들어났다.

 

 

 

 

하지만 한가지 명백한것은 아무리 세월이 흘러도 세일럼의 마녀사냥 만큼은 씻을수 없는 치욕으로 남아 미국 문명에 영원한 주홍글씨로 새겨져있다는 사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