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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프라이즈

케네디 대통령 암살의 범인은? [그날의 진실][서프라이즈]

1993년

 

 

 

한여자가 은둔한지 30여년만에 세상에 모습을 드러냈다. 그녀는 미국의 제 35대 대통령 케네디 John F. Kennedy를 암살한 오스왈드의 아내 마리나 오스왈드 였다. 그녀는 세상을 향해 자신의 남편 오스왈드는 케네디 대통령을 죽이지 않았다고 외쳤다.

 

 

미국의 제 35대 대통령 케네디 John F. Kennedy

 

1963년 11월 22일 12:30pm 미국 텍사스주 댈러스

공항에서 댈러스 시내까지 카퍼레이드 중이던 케네디 대통령 그가 댈러스 광장에 도착했을때 그를 향해 세발의 총성이 울렸다. 세발의 총알중 두발을 맞은 케네디는 곧바로 공항에 옮겨졌다. 그러나 케네디는 병원에서 숨을 거두고 만다. 케네디가 암살당한지 70분후 사건현장에서 약 5km떨어진 텍사스 극장에서 오스왈드가 용의자로 체포되었다. 오스오라드는 범행을 부인하며 억울함을 호소했다. 이틀뒤 오스왈드는 댈러스 경찰서에서 교도소로 이송되던중 나이트클럽 운영자인 잭 루비가 쏜 총에 맞아 사망한다. 

 

 

실제 잭 루비가 오스왈드를 저격하는장면

 

그런데 잭루비는 감옥에서 의문의 죽음을 맞고 만다. 그후 잭루비와 오스왈드가 CIA의 정보원이란 사실이 들어나면서 케네디 암살사건은 의혹에 휩싸이게 된다. 그러자 일부사람들은 케네디를 암살한 배후에 CIA가 있으며 오스왈드는 CIA의 명령을 받은 하수인에 불과하다고 주장했다. 

 

 

 

 

약 10개월후 대통령 암살사건을 조사한 워런 위원회는 평소 정신이상증세를 보였던 오스왈드가 단독으로 저지른 범행이라고 결론지으며 의혹을 일축했다. 결국 오스왈드가 단독으로 범행을 저질렀는지 누군가의 명령을 받았는지는 명확이 밝혀지지 않은채 오스왈드는 케네디의 암살범으로 남게된다. 

 

그런데 1993년 오스왈드가 살해당한후 종적을 감추었던 아내 마리나가 은둔한지 30년만에 세상에 모습을 드러낸다. 오스왈드는 케네디를 죽이지 않았다고 외친 마리나 그녀의 주장에 전세계는 경악했고 케네디 암살 사건은 다시한번 초미의 관심사로 떠올랐다. 

 

마리나는 전 CIA국장인 앨런 덜레스를 케네디 암살사건의 배후로 지목했다. 앨런 덜레스는 케네디 암살사건의 공식 결과 보고서인 워런 위원회 보고서를 작성한 사람이었다. 기자 앤서니 서머스는 워런 위원회의 보고서에 의혹을 제기하며 마리나의 주장을 뒷받침했다.

 

 

사건 당시 마리나

 

첫번째 의혹 : 총알이 발사된 장소와 총알의 방향

워런 위원회 보고서에는 6층에서 세발의 총알이 발사도었으며 케네디는 뒤에서 날아온 세번째 총알에 머리를 맞아 치명상을 입었다고 기록되어있다. 그런데 앤서니 서머스가 케네디의 시신을 검시했던 파크랜드 병원의 의사를 취재한 결과 케네디가 앞에서 날아온 총알에 맞아 사망했다는 사실을 알게된다. 케네디의 시신은 뒤통수에 큰 구멍이 나있었는데 이는 케네디가 앞쪽에서 날아온 총탄에 맞았다는 증거이다. 또한 사건당시 현장에 있었던 대부분의 목격자 역시 케네디의 앞쪽에서 총알이 날아왔다고 말했다. 

 

두번째 의혹 : 케네디와 텍사스 주지사가 입은 총상

워런 위원회 보고서에 따르면 케네디를 향해 쏜 3세방의 총알중 한발은 케네디의 머리에 치명상을 입혔고 한발은 빗나갔다. 그리고 나머지 한발은 케네디를 맞춘뒤에 케네디의 앞에 앉아있던 텍사스 주지사에게 부상을 입혔다고 기록되어있다. 그런데 앤서니 서머스가 케네디와 텍사스 주지사가 입은 총상을 분석한 결과 케네디는 오른쪽 등에서 목으로 총알이 관통했고 텍사스 주지사는 오른쪽 가슴을 관통한 총알이 오른쪽 손과 왼쪽 허벅지에 총상을 입힌것으로 분석되었다. 그런데 케네디 위에서 날아온 한발의 총알이 이와같은 총상을 입히는것은 과학적으로 불가능한 일이었다. 첫번째 총알이 케네디의 목을 관통한뒤 방향을 완전히 바꾸어 텍사스 주지사의 오른쪽등을 맞춰야 하기 때문이었다. 

 

이상한점은 그뿐만이 아니었다. 경찰이 텍사스 교과서 보관창고 6층에서 발견된 소총에서는 오스왈드의 지문이 없었는데 몇일후 경찰은 돌연 소총에서 지문이 발견됐다고 발표한다. 그 시점은 오스왈드가 잭루비에게 살해된 직후였다. 오스왈드의 장례식이 있던날 장례식을 준비하던 장의사는 의문의 방문객을 맞는다. 장의사인 폴 그리드는 CIA요원이 오스왈드의 지문을 채취하는것을 목격한다. 이사건을 취재하던 퓰리처상을 수상한 기자 앤서니 서머스는 오스왈드의 시신에서 지문을 채취한 CIA가 소총에 오스왈드의 지문을 묻힌뒤 오스왈드를 케네디 암살범으로 몰았다고 주장했다. 또한 앤서니 서머스는 CIA가 오스왈드의 아내 마리나에게 지속적으로 위협을 가했다고 밝혔다. 

 

 

오스왈드  oswald

 

1963년 마리나는 오스오라드가 케네디를 죽였다고 말했는데 당시 마리나가 케네디의 암살범이라고 말한것은 CIA에 협박을 받았기 떄문이었다. 그후에도 마리나는 CIA에게 감시와 위협을 당했고 케네디가 암살된지 30년후인 1993년이 되어서야 비로서 세상에 입을 열수 있었다. 그렇다면 케네디를 죽인 암살범은 대체 누구일까?

 

케네디 암살을 연구한 데이브 페리 박사는 케네디를 암살한것은 CIA라고 주장했다. 그의 말에 따르면 1961년 미국 대통령이된 케네디는 소련을 비록한 공산주의 국가와 평화적 협상을 원했다. 그러자 CIA는 위기의식을 느끼게 된다. 미국과 소련이 평화협상을 체결하면 CIA의 영향력이 줄어들기 때문이었다. CIA의 우려는 현실로 나타났다. 1961년 CIA의 해체를 선언하며 당시 CIA의 국장인 앨런을 경질한다. 그리고 CIA의 비밀군사 작전권을 대통령 직속기관인 합동참모본부 밑에 두도록 한후 국가보안행동법 55호에 서명한다. 그로인해 CIA의 권력과 위세는 크게 꺾였고 CIA는 케네디에게 반감을 가지게 된다. 

 

전 CIA국장인 앨런덜레스는 케네디 대통령의 암살 계획을 비밀리에 세웠고 CIA가 케네디를 죽였다는 사실을 은폐하기위해 가짜로 범인을 만들기로 한다. 그 범인은 바로 오스왈드였다. CIA는 1959에서 1962년까지 CIA의 정보원이었던 오스왈드를 범인으로 만들기위해 치밀하게 준비했다. CIA는 케네디가 암살당한지 15분만에 오스왈드를 용의자로 지목하고 오스왈드의 몽타주를 만들어 배포했다. 결국 오스왈드는 사건발생 70분만에 체포되고 만다. 그리고 이틀후 교도소로 이송되던 오스왈드는 CIA의 정보원인 잭루비가 쏜총에 맞아 살해된다.

 

오스왈드는 케네디를 죽이지 않았으며 CIA의 희생양을 뿐이라고 주장한 마리나 그러나 케네디 암살사건을 조사한 워런 위런 위원회 보고서의 전문은 2039년까지 공개 하지 않도록 행정명령이 내려진 상태이다. 과연 2039년엔 케네디암살의 진실을 밝혀낼수 있을까 전세계인들은 그날의 진실을 공개될날을 기다리고 있다.  

 

 

마리나 오스왈드 Marina oswald 실제 인터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