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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프라이즈

렘브란트 아내 사스키아의 유언 [아내의유언][서프라이즈]

1642년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아내의 유언장을 읽고 격노하는 남자 그는 17세기를 대표하는 네덜란드의 거장

렘브란트[Rembrandt Harmensz van Rijn]였다. 대체 유언장에는 어떤 내용이 적혀있었던 것일까?

 

 

렘브란트[Rembrandt Harmensz van Rijn]

 

빛과 명암의 대조를 이용한 상징적표현으로 바로크시대의 네덜란드 황금기를 이끈 렘브란트 그는 26살때 암스테르담에 정착한이후 초상화가로 주목받고 있었다. 하지만 렘브란트는 신붕의 한계로 그림을 볼줄모르는 서민이나 상인들의 초상화만 그리고 있었는데 당시 나라에서 인정받는 화가가되려면 왕족이나 귀족들의 초상화를 그려야 했다. 렘브란트는 그림을 그리던중 얼마전 이사온 판사의 딸 사스키아를 만나게 되었다. 그는 끈질긴 구애 끝에 명문가의 딸 사스키아와 연애를 하게되었고 얼마후 그녀와 결혼까지 하게된다. 렘브란트는 아내의 도움으로 귀족들의 초상화를 그리게 되었고 심지어 왕실과도 연을 맺게되면서 명실공히 암스테르담 최고의 화가로 등극하게 된다.

 

그런데 성공을 맛본 렘브란트는 서서히 변해가기 시작했다. 자신이 그림을 팔아서 번돈은 물론 아내의 결혼 지참금까지도 사치를 일삼으며 모두 탕진했고 돈이 부족해지자 장인 롬버투스 반 아윌렌뷔르흐에게 까지 돈을 빌려가며 방탕한 생활을 했던 것이다. 사스키아는 변해가는 남편을 보며 가슴아파했다. 그러던 1641년 두사람은 아들 티튜스를 얻게되는데 아들이 생긴뒤에도 렘브란트의 방탕한 생활은 변함이 없었고 그러인해 사스키아는 아들 티투스를 홀로 키울수 밖에 없었다.

 

 

바닝코크 대장의 민병대 렘브란트의 야경

 

1642년 임종을 맞게된 사스키아 출산후 시름시름 앓던 사스키아는 아들은 낳은지 1년만에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설상 가상으로 사스키아가 죽은지 얼마되지않아 의뢰받은 민병대 초상화 <야경> 이 세간의 악평을 받으면서 렘브란트는 초상화가로써의 생명까지 끓기게 되었고 모든 고객을 잃은 렘브란트는 실의에 빠져 폐인처럼 지내게 되었다. 모든 의욕을 잃은 렘브란트를 절망속에서 꺼내준 사람은 아들 티투스의 보모이자 가정부인 헨드리키에 스토펠스 였다. 티투스를 자신의 아들마냥 정성스럽게 돌보는 헨드리키에와 사랑에 빠졌고 두사람은 한집에 가정을 꾸리고 살게 된다

 

Saskia 사스키아

그러던 어느날 예상치 못한 위기가 닥쳐왔다. 당시 기독교 사회였던 네덜란드에서는 혼인을 하지않은 두남녀가 동거하는것이 큰 죄악으로 여겨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사실 렘브란트에게는 그녀와 혼인할수 없는 치명적인 이유가 있었는데 그이유는 다름아닌 죽은 아내 사스키아의 유언때문이었다.

 

1642년 죽음을 앞둔 사스키아는 하장의 유언장을 남겼다. 유언장에는 렘브란트가 재혼할 경우 약 46,000프로린(약 19억원)에 달하는 사스키아의 유산에 대한 상속 자격이 박탈된다는 조항이 있었는데 그렇다면 사스키아는 왜 렘브란트의 재혼을 막았던 것일까? 사스키아는 아들에게 상속되는 재산을 렘브란트가 다써버릴까봐 남편의 재혼을 막는 유언장을 작성한 것이었다.

 

17세기를 대표하는 화가 렘브란트하지만 죽은 아내의 유언장으로 인해 그는 평생 사람들의 비난과 조롱을 받으면서도 사랑하는 여인과 끝내 결혼 할수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