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서프라이즈

파리의 영웅 디트리히 폰 콜티츠 dietrich von choltitz [서프라이즈]

1966년 독일의 작은 도시 바덴바덴시에 한 장례식장

 

 

2차 세계대전당시 나치와 맞서 싸운 연합군 장교들이 한남자의 죽음을 애도 하고 있었다.

놀랍게도 장예식의 주인공은 나치 전범이었다.

 

 

 

 

디트리히 폰 콜티츠 Dietrich Hugo Hermann von Choltitz

 

2차 세계대전이 한창이던 1944년 8월, 독일군 파리 사령관이었던 디트리히 폰 콜티츠 dietrich von choltitz

중장은 파리를 폭파하는 일을 두고 고민에 빠져 있었다. 당시 프랑스를 점령하고 있었던 독일은 연합군의 노르망디 상륙작전이 성공하자 위기에 빠지게 된다. 이에 히틀러는 각도시의 사령관 들에게 한가지 명령을 내리는데 파리를 폭파하라는 히틀러의 명령을 받은 콜티츠 중장은 에펠탑은 물론 노트르담 대성당, 루브르 박물관, 개선문등 파리의 주요 유적과 건축물에 폭약을 설치하여 콜티츠 중장의 명령이 떨어지면 파리 전역이 파괴될 위기에 처해있었다.

 

 

 

 

독일의 촉망받는 콜티츠 중장은 히틀러의 총애를 받아 파리의 사령관이 된다. 파리 시내에 독일 사령부를 설치한 콜티츠 중장은 조국을 위해서 파리를 지키겠다고 다짐했고 사령관으로 일하는동안 그는 전쟁중 유럽어디에서도 볼수없는 파리의 아름다운 풍경에 점점 매료된다. 결국 콜티츠 중장은 파리를 파괴하지 않기로 결심을 내렸고 자신의 부하들과 대치하게되는데 자신의 수하들을 모두 설득해서 폭발은 막은 콜티츠 중장은 마지막으로 독일에있는 자신의 아내에게 전화를 걸어서 설득을 하였다.

 

 

 

 

1944년 8월 25일 파리에 입성한 연합군은 파리시내에 있는 독일 사령부를 포위했다. 콜티츠 중장은17,000명의 장병들과 함께 연합군에 투항했고 얼마후 뉘른베르크 전범재판에 회부되었다. 콜티츠 중장은 순순히 연합군에게 투항한 점과 파리를 폭파 하지 않은 점을 인정받아 징역 3년형을 선고 받았다. 1947년 석방된 콜티츠 중장은 독일로 돌아가지 않고 당시 프랑스령이었던 바덴 뷔템베르크 지방에 정착했다. 그리고 전쟁이 끝난지 20여년이지만 1966년 여름 작은 도시 바덴 바덴에서 생을 마감한다. 그런데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그가 사망했다는 소식이 알려지자 나치에 대항하여 싸웠던 연합군 장교들이 콜티츠 중장을 추모하기위해 바덴 바덴으로 모여든 것이다. 장례식장을 찾아온 연합군 장교들과 파리의 시민들은 진심으로 콜티츠 중장의 죽음을 애도했고 파리를 구한 그의 공로를 기렸다. 히틀러의 명령을 따르지 않고 파리를 지킨 나치장교 디트리히 폰 콜티츠 Dietrich Hugo Hermann von Choltitz 비록 그는 정쟁을 일으킨 나치 전범이었지만 콜티츠 중장의 용기 있는 결단으로 인해 파리는 오늘 날에도 아름다움을 간직한 도시로 남을수 있었다.

 

 

 

 

 

히틀러의 배신자가 될지언정 인류의 죄인이 될수는 없었습니다.        - 뉘른베르크 전범재판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