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4년 7월 남아프리카공화국 요하네스버그
한적한 공원에 한대의 승용차가 세워져있다.
생에 마지막순간
남자가 꺼내든것은 한장의 사진이었는데
그사진은 죽어가는 어린소녀를 바라보는 한마리의 콘도르였다.
케빈 카터 kevin carter의 수단 아이를 기다리는 게임 Waiting game for Sudanese child
공원에 스스로 목숨을 끊었던 자는 놀랍게도 3개월전 퓰리처상을 수상한 남아프리카 공화국 출신의 33살의 보도 사진작가 케빈 카터 Kevin Carter 였다. 그에게 퓰리처상의 명예를 안겨준 사진은 아프리카 수단의 한 소녀와 그아이를 바라보는 콘도르를 담은것이었다.
퓰리처상을 수상하기 1년전 1993년 3월11일 케빈 카터는 가장 가까운 친구이자 동료사진작가인 켄 오스트부룩과 함께 수단남부의 한마을에 도착한다. 수단은 이슬람을 믿는 정부군과 기독교를 믿는 반군사이에 벌어진 37년간의 내전으로 나라의 황폐해졌고 국민들은 집과 가정을 잃고 국제도움기구 없이는 살아가기 힘들정도의 상황에 치닫고 있었다. 그리고 케빈 카터는 참혹한 현장을 카메라에 담기 시작했다. 그런데 케빈 카터가 식량 보급소 주위를 촬영하던중 커다란 새가 시야에 들어왔다. 그새는 콘도르였는데 콘도르는 죽은 시체를먹고 살아가는데 놀랍게도 콘도르는 힘없이 앉아있는 어린소녀가 죽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케빈 카터는 본능적으로 그모습을 사진에 담았다. 그리고 사진을 뉴욕타임즈로 보낸다. 2주후 케빈 카터가 찍은 그사진은 뉴욕타임즈를 통해 세상에 공개 되었는데 콘도르 앞에서 죽어가는 소녀의 모습은 수다뿐만아니라 전쟁지역의 아이들의 비참한 현실을 상징적으로 보여주었다는 평가를 받으며 사회의 큰파장을 일으킨다. 케빈의 사진을 본 사람들은 전쟁의 참혹함을 알게되었고 수단을 돕기위해 구호단체는 구호자금과 구호물품을 보내기 시작했다. 결국 이듬해 케빈 카터은 그사진으로 사진작가로 받을수 있는 최고의 영애인 퓰리처상까지 받게 된것이다.
하지만 무명사진작가였던 그를 세계적인 사진작가로 올려놓은 이사진으로 케빈은 위기를 맞는다.
사진 한장을 찍기위해 죽음앞에 소녀를 외면했다며 케빈에게 거센 비난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심지어 케빈 카터 역시 소녀가 죽기만을 기다린 콘도르와 똑같다는 뜻에서 사진속 콘도르 머리에 케빈의 얼굴을 합성한후 조롱하는가 하면 영국의 3인조 락밴드 매니 스트리트 프리처스는 케빈이 전쟁의 실상을 알리는척하면서 자신의 이익을 위해 위험에 처한 소녀를 이용했다는 노래를 만들어 부르기 까지 한다. 세상에 진실을 알리기 위해 목숨을 걸고 일한 자신에게 모욕과 비난이 돌아오자 케빈은 괴로워한다. 케빈의 진실을 이해하는 유일한 사람은 오직 친구 켄뿐이었다. 근거없는 세상의 비난으로 힘들때마다 케빈 카터은 친구 켄으로 부터 큰 위로를 받았다.
실제 켄 오스트브룩
그런데 4월18일 남아프리카 공화국에서 벌어진 흑인부족간의 전쟁을 취재하러 갔던 친구 켄이 촬영도중 총에 맞아 죽고 만다. 가족보다도 더 자신을 이해해주던 친구 켄의 죽음으로 케빈 카터는 충격에 빠지고 만다. 친구의 죽음 이후에도 세간의 질타는 멈추지 않았다. 케빈은 점차 자신의 인생에 대해 허무함을 느끼게 된다.
그리고 3개월후 1994년 7월 남아프리카공화국 요하네스버그, 단한장의 사진으로 사진작가로써 최고의 자리까지 올랐던 케빈 카터는 결국 그사진으로 인해 비극적으로 생을 마감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