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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프라이즈

피트베스트 Pete Best 와 링고스타 Ringo Starr [나는 비틀즈다]

 

20세기 최고의 밴드 비틀즈 The Beatles

비틀즈의 공연 영상을 보고있는 두남자

그들은 비틀즈의 드러머 피트베스트 Pete Best 링고스타 Ringo Starr 였다.  

 

 

비틀즈는 기타에 존 레논John Lennon조지 해리슨 George Harrison 베이스의 폴 매카트니 Paul McCartney 드럼에 링고스타 까지 4인조로 구성된 밴드로 1962년 공식 데뷔 이후 1970년 해체 하기까지 8년간의 짧은 활동기간에도 음악사에 한획을 그은 전설로 남아있다. 그런데 1960년 무명일 당시 비틀즈는 5인조로 존레논과, 폴매카트니, 조지해리슨, 스튜어트 섯클리프, 그리고 드러머는 피트 베스트 Pete Best 였다. 당시 피트는 리버풀 지역에서 활동하는 많은 인디 뮤지션들이 공연을 하던 카스바 클럽 주인의 아들로 피트 역시 이곳에서 드럼 연주자로 활동하고 있었는데 어느날 폴 매카트니가 처음으로 하게되는 독일 공연을 앞두고 당시 공석이었던 드러머 자리를 피트에게 제안하면서 비틀즈에 합류하게 되었다. 이렇듯 독일 공연을 계기로 5인조가된 비틀즈는 그후 유럽의 몇몇 지역과 영국 리버풀 지역에서 왕성한 활동을 펼쳤고 그결과 리버풀에서 가장 인기 있는 밴드로 거듭나는데 멤버들중 가장 큰인기를 얻은 사람은 바로 드러머인 피트 베스트 였다. 훗날 폴 매카트니는 인터뷰를 통해 당시 피트 베스트가 뛰어난 드럼 실력과 매우 잘생긴 외모 때문에 그룹에서 가장 인기가 많았다고 밝혔고 리버풀 지역의 음악잡지 MERSEY BEAT 의 기자 밥울러 또한 당시 비틀즈의 공연을 보러 오는 팬의 대다수가 피트 베스트의 팬이었다고 말하기도 했는데 이렇듯 점점 높아지는 비틀즈의 명성을 주목한 브라이언 엡스타인이 비틀즈와 매니지먼트 계약을 체결하면서 비틀즈는 본격적으로 정식 데뷔를 준비하게 된다. 그리고 1961년 스튜어트 섯클리프가 비틀즈를 탈퇴하고 폴 매카트니가 베이스로 전향하면서 비틀즈는 지금의 4인조 체제를 갖추게 된다.

 

 

 

피트베스트 Pete Best

 

피트 베스트의 탈퇴와 링고 스타의 합류

그러던 1962년 8월 피트 베스트는 매니저인 브라이언 엡스타인으로 부터 갑자기 퇴출통보를 받게 된다. 당시 그의 퇴출원인을 두고 비틀즈가 공연을 할때마다 고개를 숙인채 연주에만 열중하는 피트 베스트의 행동이 멤버들의 반감을 샀다는 설부터 비틀즈가 피트 베스트와 비틀즈로 불릴정도로 유독 피트 베스트의 인기가 높았기 때문이라는 설까지 많은 주장들이 나왔다. 당시 탈퇴 기사에는 "비틀즈의 말" 이라는 내용으로  다음과 같이 쓰여 있었다. "피트는 서로 합의하에 그룹을 떠났습니다. 갈등이나 어려움은 없었고 우호적인 결정이었습니다." 그렇게 피트 베스트는 비틀즈를 떠난다. 그리고 피트 베스트 대신 비틀즈의 드러머 자리에 오게된 사람이 바로 링고 스타였다. 당시 링고는 리버풀에서 비틀즈 다음으로 인기를 끌었던 로리스톰 앤드 더 허리케인즈의 드러머였다. 밝고 사교적인 성격을 가지고 있었던 링고 스타는 평소 비틀즈 멤버들과 친하게 지냈는데 공시 데뷔를 앞둔 비틀즈 측에서 합류 해달라는 제안을 받고 고민 끝에 비틀즈의 드러머가 된것이었다. 하지만 피트 베스트의 퇴출에 분개한 팬들이 항의 시위를 하면서 피트의 복귀를 요구하는가 하면 멤버 교체를 강하게 원했다고 알려진 조지 해리슨은 피트의 팬으로 부터 박치기를 당해 눈가에 멍이 들기도 했다. 그러나 1962년 발표된 비틀즈의 첫 싱글 <LOVE ME DO> 그리고 이듬해 1963년 발표된 정규 1집 <PLEASE PLEASE ME> 까지 공전의 히트를 기록하며 전세계가 열광하는 밴드로 거듭난 비틀즈, 그렇게 비틀즈가 큰 성공을 거두면서 피트 베스트와 링고 스타는 전혀 다른 삶을 살게된다.

 

 

 

 

링고스타 Ringo Starr

 

 

피트 베스트와 링고 스타 그후

비틀즈 탈퇴후 피트 베스트는 다른 밴드를 결성해 1964년 첫 싱글 앨범을 발표한다. 하지만 밴드 자체는 피트 베스트의 명성으로 반짝 인기를 끌었지만 그가낸 앨범은 무참히 실패하고 만다. 1965년 비틀즈의 성공을 지켜보며 깊은 좌절감을 느낀 피트는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 까지 했다. 결국 피트는 음악 활동을 중단 했으며 그후 공무원으로 새로운 삶을 살게된다. 한편 비틀즈의 드러머로 세계적인 스타가된 링고 스타 역시 힘든 시기가 있었다. 1962년 9월 드러머가 링고 스타로 교체된 직후 비틀즈의 첫 앨범 녹음 당시 뜻밖에도 링고의 드럼 실력을 걱정한 프로듀서 조지 마틴에 의해 첫앨범의 드럼파트는 링고가 아닌 세션 드러머 앤디 화이트가 맏았으며 링고는 옆에서 마라카스를 흔드는 굴욕을 맛보아야 했다. 훗날 링고 스타는 비틀즈 전기 작가 헌터 데이비스 헌터 데이비스 Hunter davies 와의 인터뷰에서 당시의 심경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난 끝이구나. 피트 베스트에게 한 짓을 내게도 하는구나" 이에 링고 스타는 모두에게 인정받는 드러머로 거듭나고자 피나는 노력을 했고 그후 비틀즈의 모든 앨범에서 드럼 연주를 맡을수 있었다. 또한 매우 밝은 성격으로 평소 사람들과 금방 친해지고 웃는 모습만 보였던 링고 스타였지만 그는 유독 비틀즈의 공식 활동중에는 자신을 드러내려 하지 않았는데 가령 멤버들이 더 주목 받을수 있도록 차에 탈때도 가장 먼저타고 가장 늦게 내리는가 하면 기자 회견에서도 말수가 적었다. 그는 1970년 비틀즈가 해체된후 야심하게 홀로 서기에 도전하지만 부담감으로 기대에 못미치는 결과를 이루었고 급기야 알코올에 중독되는데 심지어 그는 어린 아들의 생일날 친한 뮤지션 키스문이 자신의 아들에게 드럼키트를 선물하자 화를 내며 돌려보내는 일도 있었다고 한다.

 

 

 

피트베스트 Pete Best

그들의 현재

각자 나름대로 힘든 시간을 보낸 피트와 링고 그렇다면 지금은 자신의 삶을 후회하고 있을까? 피트는 1995년 비틀즈의 명곡집이 발매 되면서 퇴출된 과거를 어느정도 보상 받게 된다. 이 앨범에는 과거 피트가 연주했던 10곡이 포함 되었고 이에 평생 공무원 생활을 하며 벌어들인 돈보다 많은 어마어마한 액수의 배당금을 받게 된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인기와 더불어 각종 루머와 비극적인 죽음을 겪어야 했던 다른 멤버들과는 달리 행복한 가정을 꾸리고 살고 있는 피트는 자신의 삶에 만족한다고 밝혔으며 지금도 음악활동을 이어 가고 있다고 한다. 그리고 링고 스타역시 평소 그가 가진 친화력과 비틀즈를 사랑했던 많은 동료와 후배들의 도움으로 알코올 중독 치료를 받으며 링고 스타 앤드 히스 올스타 밴드를 만들어 1989년 콘서트를 열며 화려하게 재기 했으며 현재까지 왕성한 음악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전설적인 밴드 비틀즈의 드러머 피트 베스트와 링고 스타 그들은 지금도 비틀즈의 이름으로 기억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