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서프라이즈

조지밀러 감독 스토리 <매드맥스의 귀환>

 

 

무명배우 '멜 깁슨'을 스타로 만든 영화 <매드맥스1>

 

보다 업그레이드된 액션 신과 차추격신으로 호평을받은 <매드맥스2 : 로드워리어>

 

팝스타 '티나터너'가 출연해 화제를 모은 <매드맥스3 : 썬더돔>

 

이 매드맥스 시리즈는 모두 한명의 감독이 만든것으로, 1985년 <매드맥스3 : 썬더돔>개봉후 사람들은

 

그의 차기작역시  매드맥스 시리즈 일거라고 기대한다.  그런데 그는 전혀 다른 영화의 장르를 만들기 시작한다.

 

 

 

 

 

매드맥스 시리즈를통해 할리우드의 전설이자 매드맥스의 아버지라 불리는 호주 출신의 영화감독 '조지밀러' 그가 영화 감독으로 데뷔한 첫작품이 바로 1979년 개봉한 <매드맥스1>인데 그가 매드맥스를 만들게 된것은 누군가와의 운명적 만남에서 비롯되었다.

 

1971년 조지밀러는 의과대학을 다니던 의대생이었다. 하지만 영화를 좋아했던 그는 재미삼아 영화제작 수업을 듣게 되는데 그는 그곳에서 '바이런 케네디'라는 남자를 만난다. 당시 바이런케네디는 영화를 전공하던 학생으로 18세부터 제작사를 만들어 단편영화를 만들어온 아마추어 영화 제작자였는데 조지의 잠재력을 알아본 바이런은 적극적으로 그를 설득했고 이에 두사람의 이름을딴 케네디 밀러 프로덕션 <KENNEDY MILLER MITCHELL> 을 설립해 <영화속 폭력><VOLENCE IN CINEMA> 이 라는 단편영화를 만드는데 이영화가 호주 영화인 협회가 시상하는 최고의 단편영화상을 수상하면서 조지밀러는 본격적으로 영화의 세계에 발을 들인다.

 

 

 

 

 

 

 

 

 

 

 

 

 

 

매드맥스의 시작

 

그러던 어느날 우연히 조지가 써놓았던 시나리오를 보게된 바이런, 이 시나리오를 보고 영화로 만들기로한다. 그것이 바로 <매드맥스1>이었다. 매드맥스1은 아내와 자식을 잃은 경찰 맥스가 그들의 목숨을 앗아간 갱들을 상대로 복수를 벌이는 내용으로 어린시절 자동차 사고로 친구를 잃었던 그의 경험담을 바탕으로 쓴것인데 그후 조지밀러는 연출, 바이런케네디는 촬영과 제작을 맡고 본격적인 영화 제작에 돌입한다. 

 

하지만 열악한 제작환경 탓에 조지밀러는 응급실의사로 일하며 제작비를 보탰고 촬영중 부상을 입은 배우가 생기면 그가 직접 치료를 하기도 했는데 뿐만아니라 바이런의 차를 촬영용으로 사용하고 바이런의 집에서 그의 아버지가 만들어준 구형 편집기를 이용해 편집을 하는등 그 제작 과정은 쉽지 않았다. 

 

그러나 이렇게 만들어진 영화 매드맥스1은 뜻밖의 성공을 거둔다. 당시 사실감 넘치는 화려한 액션신과 황량한 벌판에서 벌이는 스릴 넘치는 차 추격전으로 액션 영화의 새로운 장르를 열었다는 호평을 받으며 대 흥행을 기록했고 불과 40만 호주달러의 제작비로 전세계에서 1억 달라를 벌어들여 제작비에 비해 가장 큰 수익을 올린영화로 기네스북에 오르기까지 한다.

 

그리고 조지밀러는 바이런 케네디와 함께 1년후인 1980년 <매드맥스2 : 로드워리어>와 1985년 <매드맥스3 :썬더돔> 까지 만들었고 두영화 모두 3천만 달러 이상의 수익을 기록하며 전세계적으로 매드맥스 신드룸이 인다.

 

 

 

 

 

 

 

 

 

 

 

 

 

 

 

매드맥스3편이후 다른장르의 영화를 제작하는 조지밀러

 

그런데 그후 매드맥스 시리즈의 후속작을 원하던 팬들을 뒤로하고 조지밀러 감독은 의외의 행보를 보이는데  1987년에는 마녀가 악마를 괴롭힌다는 내용의 코미디영화 <이스트윅의 마녀들>을 1993년에는 불치병 아들을 살리려는 부부의 감동드라마 <로렌조 오일>을 그후에는 돼지를 비롯한 동물들의 좌충우돌 모험담을 담은 가족영화 <꼬마 돼지 베이브>를 심지어는 남극의 펭귄이야기를 그려낸 애니메이션 <해피피트>를 만드는등 매드맥스와는 너무나도 다른 장르의 영화들이었다.

 

 

 

 

 

 

 

 

 

 

 

 

 

 

 

바이런 케네디

 

그렇다면 그는왜 매드맥스3 이후 후속작을 만들지 않는 것일까?  

 

매드맥스3편 촬영준비를 하던 어느날 조지밀러의 친구이자 영화 제작자인 바이런 케네디가 장소 헌팅을 떠난다. 매드맥스의 촬영은 주로 사막이나 산중 칸은 험한곳에서 진행되는 일이 많았고 이에 바이런은 직접 헬리콥터를 조종해 장소 헌팅을 다니곤 했었는데 그날밤 충격적인 소식이 전해진다. 호주 뉴사우스웨일즈의 상공을 비행하던 바이런의 헬리콥터가 와라감바 댐에 충돌하여 인근호수에 추락 이사고로 바이런이 숨을 거둔것이었다.

 

의사가 되려고 했던 그에게 영화감독의 꿈을 실현시켜주었으며 그동안 매드맥스 시리즈를 모두 함께한 동반자였던 바이런의 갑작스런 죽음은 그야말로 그에게 큰충격이었다. 급기야 더이상 촬영을 이어갈수 없었던 그는 예정되있었던 매드맥스3편의 제작을 중단하기 까지하는데 결국 조지 오길비 감독을 긴급 투입하면서 공동감독 체제로 가까스로 매드맥스3편이 마무리된다.

 

하지만 그후에도 바이런을 잃은 슬픔을 이기지 못한그는 더이상 매드맥스 시리즈를 만들지 않았고 다른 영화들만 만들었던것이었다. 그리고 이러한 사연이 알려지자 많은 사람들이 안타까워 했는데 무엇보다도 사람들은 다시 그가만든 매드맥스 시리즈를 볼수있기를 원했다.

 

 

 

 

 

 

 

 

 

 

 

 

 

 

2015년 <매드맥스 : 분노의도로>의 개봉

 

그러던 2015년 드디어 기다리던 소식이 들려온다. 그것은 매드맥스 시리즈 4편에 해당하는 <매드맥스 : 분노의도로>의 개봉소식이었다. 이영화의 감독 역시 조지 밀러 였는데 그러자 사람들은 그가 어떻게 해서 다시 매드맥스 시리즈를 만들게 된것인지 궁금해 했다.

 

조지 밀러 감독은 한 인터뷰를 통해 오랫동안 간직하고 있던 친구 바이런을 잃은 슬픔을 매드맥스를 다시 만들면서 극복하고 싶다고 말했는데 매드맥스3이 개봉된지 무려 30년 만이었고 그의 나이 70세였다.

 

그리고 역시나 매드맥스4편의 개봉결과 화끈한 액션신으로 21세기 액션영화의 새로운 기준이 되었다는 호평과함께 전세계적으로 3억달러가 넘는 수익을 기록하는 파란을 일으켰고 조지밀러는 이영화를 통해 70세 노장 감독의 화려한 귀환 이라는 찬사를 받는다.

 

그리고 그는 매드맥스의 성공에 바이런을 뺄수 없다며 고마움을 전했다고 한다.  

 

 

 

 

 

매드맥스 : 분노의도로

 

 

최고의 액션 영화중 하나로 꼽히는 매드맥스를 만들었지만 친구의 죽음으로 30년만에 후속작을 발표한 조지밀러감독, 현재 그는 매드맥스5편을 준비중이라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