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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프라이즈

히틀러의 유대인 홀로코스트보다 규모가 더큰 홀로코스트 인도대기근 [비밀문서]

1943년 인도 벵골

 

굶주림에 야윈 처참한 모습들 거리마다 즐비한 시체들 이는 인도 역사상 최악의 대기근이었고 이로인해 700만명이 굶어 죽는다.

 

 

 

 

67년이 지난 2010년 인도 벵골

벵골대기근을 연구하던 미국의 역사학자 무케르지가 문서 하나를 발견한다. 그문서에는 벵골대기근에서 죽은 700만명의 사람들이 누군가의 계략에 의해 죽었다는 기록이 담겨있었다.

 

미국 공익대 역사학과 교수인 마두우수리 무케르지 [Madhusree Mukerjee] 벵골 대기근을 연구하기위해 직접 벵골지역을 찾아갔는데 연구하는 과정에서 대기근이 발생했던 1943년당시 벵골에서는 가뭄과 홍수같은 자연재해도 없었고 쌀수확량도 평년과 크게 다르지않았다는 사실을 알았다. 그런데 어떤이유에서인지 최악의 대기근이 발생했고 이로 인해 7백만명이나 사망한 것이었다. 벵골대기근에 대한 의문은 점점더 커져만 갔는데

 

 

 

그러던 어느날 당시 벵골지역에 고문서를 검토하던중 비밀문서 하나를 발견한다. 그문서는 1943년에 있었던 대기근에 대해 당시인도에 주둔하고 있던 영국군이 기록해 놓은것이었는데 이 비밀문서에 대기근이 발생한 이유가 자연재해나 기상기후때문이 아니라 영국군이 자행했던 쌀수탈 정책때문이라고 기록되어있었다.

 

영국군들은 벵골지역에서 판매되는 쌀들은 물론이고 각가정에 있던 쌀이란 쌀은 모조리 빼앗아 갔다. 그런데 더욱놀라운것은 이런 쌀 수탈 정책을 지시한 사람이었다. 그사람은 바로 당시 영국의 수상

처칠[Winston Leonard Spencer Churchill ]이었다. 처칠은 제 2차 세계대전당시 세계평화를 지키기위해 전체주위에 맞서 연합군을 이끌던 영국의 지도자 였다. 처칠은 왜 700만명이나되는 인도인들이 굶어 죽도록 쌀을 빼앗아 갔던 것일까?

 

 

 

 

 

 

제2차 세계대전당시인 1942년 영국은 동남아쪽으로 세력을 확장해오고 있는 일본과 미얀마에서 치열한 접전을 벌리고 있었다. 하지만 영국은 일본에 밀려 당시 영국 지배려이었던 미얀마를 일본에게 빼앗기고 만다. 처칠은 인도에게 미얀마를 빼앗긴후 인도까지 빼앗길까 두려웠다. 영국의 마지막 보류였던 인도를 잃는다는것은 영국이 아시아에서 모든 패권을 잃는다는것을 의미했다.

 

처칠은 인도를 지키기위해 고민했고 한가지 방안을 생각해냈다. 처칠은 벵골 지역쌀을 모두 거두어 들이면 일본군이 처들어 오더라도 보급품 부족으로 오래 버티지 못할것이라고 생각했다. 처칠에 명령에 따라 영국군들은 벵골지역의 쌀을 모조리 수탈해갔다. 굶주림에 지친인도인들은 어떻게든 쌀을 구하기위해 몸부림 쳤지만 쌀은 점점더 구경조차 힘들게 되었다.

 

쌀수탈정책이 시작되자마자 쌀값이 천정부지로 치솟았다. 4개월만에 쌀값이 무려 61%나 폭등했고 그후 6개월만에 다시 4배나 올랐다. 쌀수탈 작전이 몇달 되지않아 거리는 옴통 굶주림에 지쳐 앙상하게 야윈 사람들로 가득찼고 죽음사람들의 시체가 여기저기 즐비하게 수북히 쌓이는 참담한 모습들이 이어졌다.

 

 

 

 

영국에서 파견되어 식민지 국무장관을 수행하고 있던 레오 아메리는 이모습을 보다못해 긴급구호 식량을 보내 달라고 영국 정부에 건의한다.

"여기 아녀자와 아이들이 길거리에서 죽어 나가고 있습니다. 아무리 전쟁중이라 하더라도 ... 최소한의 인권은 보호할수 있도록....구호식량을 빨리보내주십시오"

레오 아메리 국무장관이 영국정부에 여러차례 긴급구호 식량을 요청했지만 처칠은 그때마다 단호하게 거절했다.

 

벵골대기근이 영국의 쌀수탈정책 때문이라는 사실을 전혀알지 못했던 국제사회는 벵골지역 사망자가 계속늘어나자 벵골지역에 구호식량을 보내기로 결정한다. 심지어 처칠은 다른나라 배들이 직접 쌀을 싣고오자 그배들이 정박하지 못하도록 항구를 폐쇄해 버렸다. 결국 벵골은 국제 사회의 도움도 받지 못한채 수백만명이 굶어 죽는 죽음의 땅이 되고 만다.

 

처칠의 행동에 크게 실망한 레오 아메리 국무장관은 자신의 일기에 "인도 문제에 관한 한 처칠이 제정신이 아니다"라고 적어 놓기도 했다. 벵골대기근에대한 진상이 외부에 알려지기를 두려워 했던 영국정부는 처칠이 당시 벵골의 쌀수탈 정책을 지시했던 공식 회의록이나 보고서들은 모두 파기했고 벵골에서 있었던 대기근은 사람들에게 자연재해로 인한 참사로 알려지게 된다.

 

 

 

 

그러던 2010년 역사학자인 무케르지의 저서 <처칠의 비밀전쟁>[CHURCHILL'S SECRET WAR] 을통해 벵골 대기근이 자연재해가아닌 영국의 쌀수탈정책 때문에 일어난 것이라고 폭로했다. 전세계 언론들은 벵골 참사로 사망한 700만명은 제2차 세계대전당시 히틀러가 죽인 유대인 600만명과 맞먹는 수준이라며 처칠의 벵골 홀로코스트는 2차대전당시 나치의 유대인 홀로코스트보다 더 규모가큰 학살이라고 처칠의 행위를 비난했다.

 

인도 역사상 최악의 대기근으로 700만명이 굶주림속에 죽어간 벵골 대기근 그동안 당시 대기근이라고만 알려져왔던 벵골대기근의 진실은 한지도자의 전쟁에 대한 야망 때문에 빚어진 참사였다.